'Hip지로'된 '乙지로'...2·3호선 승객 하차수로 증명됐다
최근 을지로 3가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같다. 미술관 같은 여자, 동물원 같은 남자. 영화속 서로다른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영화의 주제처럼, 을지로에서는 ‘인쇄소 옆에 카페’가 ‘공업소 옆에는 술집’이 자리한다.

인쇄소와 공업소의 이웃으로 최근들어서야 뒤늦게 자리잡은 카페와 술집들은 을지로스러움과 젊은 감성을 함께 살렸다. 인쇄소와 카페, 공업소와 술집은 서로 다르지만 을지로 안에서 한 데 어우러진 모습이다. 그래서 을지로는 ‘힙(Hip·신선함)지로’라고 불린다.

전문가들은 을지로 상권에는 신흥상권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고 말한다.

‘낮의 동네’에서 ‘밤에도 뜨거운’ 동네로
새로운 감성을 찾아 을지로를 찾는 젊은층은 최근들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을지로 상권이 각광받으면서 인근 전철역인 을지로3가역을 찾는 전철 이용객 숫자도 늘어가고 있다. 19일 서울교통공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2호선과 3호선 전철을 타고와 을지로3가역에서 하차했던 승객의 숫자는 일평균 3만4498명에 달했다. 지난 2017년도 3만87명, 2015년도 2만9401명과 비교했을 때 약 4400여명 이상 증가했다.

승차승객도 일평균 3만4105명(2013년 2만7739명→2015년 2만8548명→2017년 2만9404명)으로 2년전 대비 약 4700여명 증가했다.

승객 추이 기록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019년도 기준 오후 5시~8시 시간대 도시철도를 타고와 을지로3가역에서 내린(하차) 승객들의 숫자다. 지난해 오후 5~8시 시간대, 일평균 하차 승객수는 약 4917명이었는데, 이는 2017년(약 3254명)과 비교했을 때 1660여명 가량 증가한 숫자다. 지난 2015년(약 2977명)과 2013년(약 2878명)에 비교했을 때도 큰폭으로 증가했다.

이중에서도 오후 6~7시 시간대 하차승객수가 눈에 띠었다. 2019년도 5월 31일 이후 시점을 기준으로 오후 6~7시 시간당 이용객 수가 3000명을 넘은 경우가 총 28회였는데, 2017년 이전 통계에서는 오후 6~7시 하차승객 수가 3000명을 넘은 경우는 단 한건도 없었다.

지난해 이용객수 3000명을 넘긴 횟수 28회 중 25회는 금요일이었고, 나머지 3일은 현충일, 광복절, 크리스마스 등 공휴일 전날이었다. 을지로가 각광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휴일 전날 저녁시간대에 을지로3가역을 찾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인근에 공업사와 기업 사무실이 많아 ‘낮의 전철역’이던 을지로3가역에 밤시간대에도 사람이 북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스타그램서도 ‘인기’... 전문가들 “기존상권과 다른점 눈길”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나침반 삼아 을지로 공장가를 헤매다보면 하나둘 만나게 되는 ‘호텔 수선화’, ‘카페 한약방’, ‘을지맥옥’ 등 가게는 을지로의 예스러운 멋과 2030 젊은층의 감성을 함께 소개한다. 2030 젊은 세대들은 을지로에서의 경험을 사회관계망 서비스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고 있다.

‘서울도시연구’에 소개된 ‘인스타그램 위치정보 데이터를 이용한 을지로 3.4가 지역 활성화의 실증분석(김은택 외, 2019.)’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15년까지 불과 618건에 그쳤던 을지로 관련 포스트 수는 2016년에는 1928건, 2017년에는 6266건, 2018년에는 1만6971건으로 증가했다.

김은택 어반트랜스포머 대표는 헤럴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2019년에 대한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찌만, 신규점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만큼 전년도에도 많은 젊은세대가 을지로를 찾ㅇ잤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을지로 인근에 새로운 점포들이 각광을 받자, 최근에는 기존 상가인 노포에 대한 관심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을지로 상권이 다른 상권과 비교했을 때 다른 점이 있다고 말한다. 다른 신흥상권들처럼 기존 거리모습을 재활용하면서도 독특한 인테리어를 갖추는 것은 유사하지만, 배후가 되는 기존 거리 상권이 넓다는 점이 다르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을지로 상권에는 인쇄소라던지 벽지라던지 기존 상권이 살아있다”면서 “기존 상권과 현재 상권이 조화롭게 잘 유지되며 발전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이렇게 발달하는 상권은 흔치가 않다”고 평가했다. 도시건축전문작가 음성원 씨도 “을지로는 보다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골목 아닌 큰 도로를 끼고도 형성되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신흥상권이 임대료 인상 등의 문제로 와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을지로 상권은 배후지가 넓어 그런 여파가 적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넓은 배후지를 가진 탓에, 을지로 상권에선 지역별로 다른 모습이 보여지기도 한다. 을지로 상권은 을지로 대로 남쪽과 북쪽이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다. 과거 인쇄소거리로 분류됐던 남쪽 지역은 신흥 술집과 펍들이 자리하기 시작했고, 청계천공구상가와 노포가 있던 북쪽 에는 새로운 카페들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힙지로, 재개발로 사라지나...?
하지만 을지로 상가는 그 멋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을지로에도 불고 있는 ‘재개발’과 ‘도시재생’의 열풍 속에서다. 서울시는 3월 초순께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세운지구’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겠단 의사를 밝혔다.

을지면옥과 통일집 등 ‘노포(老鋪·오래된 음식점) 보존’ 논란이 일고 1년 2개월만이다. ‘을지면옥이 재개발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가 지난해 1월 언론을 통해 전해졌고, 서울시는 이전까지 추진해왔던 재개발 사업을 잠시 중단한 바 있다.

이번 결정에서 서울시는 기존 재개발의 포커스를 ‘개발·정비’에서 ‘보전·재생’으로 바꿨지만, 을지로의 생태계 상당수는 크게 훼손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경우가 을지로의 대표적 노포이자 냉면 맛집인 ‘을지면옥’의 철거다. 이번 서울시의 결정으로 을지면옥이 위치한 현재 건물은 철거가 이뤄지게 된다.

주위의 청계천 공구상가들은 ‘철거 반대’ 입장이다.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공구상가가 입점한 건물을 철거하면서, 상인들에게 새로운 상가를 마련해준다고 했지만, 다수의 공구상가는 여기에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을지로는 도시개발과 함께 점차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역대 민선 서울시장들이 ‘도심의 노다지 땅’ 을지로 일대의 재개발을 추진하면서다. 이명박 전 대통령(민선 3기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 사업, 오세훈 전 서울시장(민선 4~5기)은 세운상가 철거사업, 박원순 현 서울시장(민선 5기 재보궐~민선 6기, 7기)은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김성우 기자·김용재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