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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점리와 '당'우리의 결합 마을
[헤럴드 분당판교=황정섭 편집장]조선시대 후기의 양안(토지대장)에 의하면 지금의 ‘분당’은 돌마면(突馬面)의 분점리(盆店里, 동이점)와 당우리(堂隅里, 당모루)가 통합돼 형성된 마을이다. 1906년 '구 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는 당우리의 '집 당(堂)'자가 '당나라 당(唐)'으로 바뀌어 오늘날의 '분당(盆唐)'이라는 한자 표기가 생겨나게 됐다고 적혀있다.

이 양안에는 돌마면에 분점리와 당우리 외에도 갈현리·옹점리·여수동·오야소동·하탑동·상탑동·이매동·통로동·양현리·돈서촌·율리·수내촌·정자동 등 15개 리(里)와 동(洞)이 속해 있었다. 오늘날 판교 지역인 낙생면에는 삼가리·판교리·백현리·보평리·궁내촌·금곡동·구미동·석운리·원천동·동막동·대장리·산운리·중산운리·하산운리 등 14개 리와 동이 분포돼 있었다.

◇일제 식민통치하 1914년에 ‘분당리’ 지명 첫 탄생
일제 총독부는 1914년 식민통치를 강화하고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지방행정 개편을 시행하면서 '도의 위치 관할구역 및 부 군의 명칭 위치 관할구역'을 공포했는데, 이 때 분당리(盆唐里)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나게 됐다. 이 지명은 당연히 분점리와 당우리가 통합돼 탄생한 지명이다. 당시 돌마면에는 일부 리 단위가 통합되고 분당리뿐 아니라 야탑리, 서현리가 새로 생겨 총 11개 리로 됐으며, 낙생면도 일부 리 단위가 통합되고 삼평리, 운중리, 동원리가 새로 생겨 11개 리로 됐다.

한편, 1971년 기존의 광주군 직할 성남출장소가 경기도 성남출장소로 승격되면서 종래의 중부면 6개 리 이외에 돌마면, 낙생면 전 지역과 대왕면 9개리를 여기에 편입시킴으로써 분당지역이 성남출장소에 포함되게 된다. 1973년 성남출장소의 성남시 승격에 이어 1975년 분당지역에 돌마 낙생 대왕출장소가 설치됐으며, 분당동 등 돌마면 시대의 11개동이 돌마출장소에, 판교동 등 낙생면 시대의 11개 동이 낙생출장소에 편입됐다.

이미지오른쪽


◇1989년 분당 신도시 건설계획 발표 후 1991년 ‘분당구’로 승격

1989년 4월 정부가 분당지구 일대 540만평에 10만5천 호의 주택과 도시시설을 갖춘 인구 42만명의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하면서 여기에 돌마면의 분당동, 수내동, 서현동, 정자동, 이매동, 야탑동, 도촌동, 여수동, 율동의 9개동과 낙생면의 구미동, 백현동, 동원동, 금곡동, 삼평동, 궁내동의 6개동, 대왕면의 사송동 등 총 16개동이 편입됐고 1991년 성남시 분당구로 승격됐다.

현재 분당구는 16개동 중에서 도촌동, 여수동(이상 성남시 중원구로 편입), 사송동(성남시 수정구로 편입)이 제외된 반면에 판교동, 운중동, 내장동, 석운동, 하산운동이 추가되어 총 18개동(법정동 기준)으로 이뤄졌다. 이를 굳이 옛 2개면으로 나눠 본다면 돌마면은 7개동, 낙생면은 11개동으로 구성된 것이다.

◇‘분당(盆唐)’인가 ‘분당(盆堂)’인가
분당(盆唐)인가 분당(盆堂)인가. 1990년대 초 분당 신도시 개발 전 현지 지명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그 전에 당 집(堂)이 있었던 모퉁이’이므로 ‘당모루’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 각 고을의 공식 문서인 양안에도 ‘당우동(堂隅洞)’이라는 마을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당우동은 그 후 1906년 통감정치를 시행하기 위해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한 후 지방제도 개편이 시행되는데 이 때 ‘당(堂)’이 ‘당(唐)’으로 바뀌었으며 이를 근거로 1914년 지방행정 개편 때 지금의 ‘분당(盆唐)’이 생겨난 것이다.

‘분당’과 같은 합성지명의 생명은 통합되는 두 개 지명의 대표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므로 원래의 글자에 충실해야 하며, 따라서 ‘분당(盆堂)’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이 글은 한국토지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박물관에서 1999년 발간한 <분당의 땅이름 이야기>를 참고해 정리했다.


js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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