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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발성’에 숨은 연쇄살인범 [김희량의현장에서]

“17살부터 지금까지 40년 중 36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나를 믿어주고 진정 사랑해 준 단 한 사람만 있었어도 이 자리에 있었을 것 같지 않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기 전후 여성 2명을 살해한 강윤성의 최후 진술.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이종채) 심리로 강도살인·살인·공무집행방해·전자장치부착등에관한법률위반·전기통신사업법위반 등 7개 혐의로 구속기소된 강윤성의 국민참여재판이 26일 열렸다.

강윤성은 지난해 8월 자택에서 40대 여성 A씨를 살해하고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뒤 또다른 50대 여성 B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1심 재판부는 강윤성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날 재판의 쟁점은 범죄의 계획성 여부였다. 법정에서는 ‘우발성’을 두고 검찰과 강윤성의 공방이 이어졌다. 검찰은 강윤성이 첫 번째 피해 여성 A씨를 살해하기 전 전자발찌 절단기와 식칼을 미리 구입한 점을 들어 계획적 범행임을 주장했다. 강윤성은 맞섰다. 자신에게 2290만원 가량을 빌려준 B씨로부터 채무 변제를 독촉당해, A씨로부터 돈을 빌려 갚으려다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검찰은 “중대한 범죄전력이 수회다. 무고한 피해자들이 돈 때문에, 기분 나쁜 말을 들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점, 살인 후 A씨의 카드로 휴대폰을 사 현금화한 침착한 태도, ‘피해자들이 꿈에서 미소를 지어줬다’는 발언 등을 보면 재범 우려가 높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강윤성은 재판 내내 억울함을 호소했다. 강윤성은 “B씨에게 돈을 갚으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A씨를 살해하면서까지 일부를 돌려줬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신고한다는 말에 모든 게 무너져 우발적으로 죽이게 됐다”고 말했다. 우발적. 강윤성은 자신이 뱉은 말 뒤에 숨는 듯했다.

또 “교도소에서 복역하며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으나 출소 후 상황이 좋지 않았다”며 “검찰 측은 왜 이런 점들을 왜 알아주지 않고 인격을 존중해 주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강윤성의 적극적인 변호가 이어질수록 고인들의 부재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이날 법정에는 2005년 강윤성의 강도 사건 피해자 C씨가 배상신청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C씨는 “(이 사건 피해자들이) 이 자리에 설 수 없기에 대신 나왔다”며 “일면식도 없는 강윤성에게 감금당하며 생사의 고비에서 살아남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16년 전 재판 후 이야기를 전하며 강윤성의 진술엔 신빙성이 없다고 증언했다. 살아남은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들을 변호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9명은 전원 강윤성을 유죄 판단했다. 10시간 넘게 이어진 재판에도 집중을 놓지 않았던 배심원의 최종 의견은 3명이 사형, 6명이 무기징역형이었다. 강윤성은 무고한 이들의 생명은 물론 누군가의 친구이자, 딸, 언니이자 동생을 잃게 만들었다. 남은 유족들은 그 아픔을 안은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들의 희생 앞에서 무엇을 물어야 할까.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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