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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가장 많이 부풀더니”…가상자산發 금융위기 오나
테라·루나 급락에 시장폭락
금융시장 큰손 투매 나서면
자산가격 하락 악순환 우려
“리먼브라더스 닮은꼴” 평가

역시 가장 약한 곳이 가장 먼저 흔들리는 법이다. 코로나19와 전쟁으로 인한 공급발 인플레이션에 맞서 미국 통화긴축에 나서면서 달러가 강세로 전환됐다. 달러 약세의 가장 큰 수혜를 입었던 가상자산의 타격은 피할 수 없다. 비경제적 요인에 의한 공급발 인플레가 수요를 위축시키는 불황(stag-flation)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기초체력(fundamental)이 약한 곳이 가장 먼제 문제가 되기 쉽다.

가상자산이 금융위기의 새로운 진앙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가상화폐 루나와 자매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가 연일 폭락하면서 가상자산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는 ‘코인런’ 가능성까지 제기된없다. 개인은 물론 금융권의 가상자산 투자가 상당해 전통 자산시장과 기존 금융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플레와 전쟁 등으로 금융시장의 위기 방어력은 크게 낮아진 상태다.

▶안전장치가 뇌관으로…‘죽음의 소용돌이’=테라는 테더나 USDC 등 다른 스테이블 코인과 달리 현금이나 국채 등 안전자산 대신 다른 가상자산인 루나로 그 가치를 지탱한다. 테라 가격이 하락하면 투자자는 테라폼랩스에 테라를 예치하고 그 대신 1달러 가치 루나를 받는 차익 거래로 최대 20% 이익이 가능했다. 테라 가격이 하락하면 유통량이 줄어 값이 다시 안정되는 구조다.

하지만 테라 시세 하락이 루나의 급락을 초래하며 두 코인이 동시에 추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른 바‘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다. 루나는 지난달 한때 가상자산 시가총액 10위권 내에 들었지만, 최근 일주일 새 무려 97% 폭락해 32위로 미끄러졌다. 테라는 한때 스테이블 코인(달러 등 법정화폐에 연동하도록 설계된 가상화폐) 가운데 3위 규모로 시총 180억 달러에 달했지만 가치가 반 토막이 났다.

▶가상자산 신뢰 치명타…코인런 우려=루나·테라 폭락 여파로 비트코인 가격은 3만 달러선이 무너졌다. 탈중앙(De-Fi) 프로젝트와 연관된 아발란체(-30%), 솔라나(-20%), 에이브(-24%)도 일제히 폭락했다.

애플 엔지니어 출신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테라폼랩스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테라를 담보로 15억 달러 구제금융 조달에 나섰다. 테라와 루나를 처분하려는 이들이 급증하면서 15억 달러를 모을 지도, 15억 달러로 충분할 지도 가늠이 어려운 상황이다. 시총은 루나가 17억 달러지만 테라는 107억 달러다. 테라를 팔아 루나로 먼저 바꿀수록 회수 확률이 높아진다. 코인런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권 대표가 테라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비영리단체 '루나파운데이션 가드'는 수십억 달러어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테라폼랩스가 어려워지면 비트코인을 팔아서 유동성을 마련하려 할 수 있다. 이 경우 가상자산 내 기축 역할을 하는 비트코인의 가격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위기로 번질 수도=지난 해 가상자산 가격급등은 개인 외에 기관 등 큰손들의 포트폴리오 편입에 힘입었다. 최근 인플레 우려로 기술주 가격이 하락하면서 대부분의 가상자산이 지난 해 수익을 모두 반납했다. 큰손들도 반등을 노리며 버틸지, 일단 팔아 추가 손실을 피할 지의 기로에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터진 테라 사태는 포트폴리오로서의 가상자산에 대한 신뢰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큰손이 팔고 가격이 하락하면, 다른 투자자들도 손실을 줄이기 위해 투매에 동참하는 악순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가격 하락으로 손실은 입은 금융회사들이 이를 메우기 위해 다른 자산들을 팔 수 있다. 비우량주택채권(subprime mortgage) 사태로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그 여파로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과 같은 구조다. 가상자산 시장이 커지면서 자산시장 전반의 악순환을 초래할 정도의 위력을 갖게 됐다.

▶코인발행·공개 규제 강화될듯=이번 테라·루나 사태는 근본적으로 발행주체가 초래한 위험이다.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는 가상자산거래소의 코인공개(ICO)가 가능하다. 앞으로는 미국에서도 코인을 발행해 돈을 모으기 어려워 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스테이블코인이 충분한 기초자산을 확보하고 있는 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왔다. 이번 사태로 금융당국으로서는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집하는 증권형토큰(STO)을 기존 유가증권 수준으로 강력히 규제할 명분을 갖게 됐다.

국내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자본시장법을 바탕으로 STO 발행을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존 가상자산거래소들도 STO를 상장시키려면 자본시장법 수준의 규제를 충족해야 한다. 현재는 가상가산거래소가 증권사와 거래소, 수탁사 역할을 겸하고 있지만 자본시장법을 지키려면 이를 분리해야 할 수 있다.

▶가상자산거래소 역량 시험대에=최근 3년간 가격상승과 거래량 증가에 익숙해진 가상자산거래소들이 이번 사태로 촉발될 수 있는 투자자보호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지도 관건이다. 현재 가상자산거래소들은 거래중개 명분의 수수료를 받지만 거래되는 자산들에 대한 충분한 정보는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 미국 코인베이스 주가는 11일 하루에만 26% 폭락하며 50달러 선이 위태롭다. 지난해 7월 고점 대비 1/7 수준이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는 아직 상장은 되어있지 않지만 카카오와 게임주 등 관련주들이 폭락세다. 지난해 돌풍을 일으켰던 메타버스, 콘텐츠 관련 기업도 상당하다. 이달 초까지해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기술주 가치를 하락시키며 가상자산 가격도 약세를 보였다. 이번 테라·루나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이 흔들리면서 다시 기술주 전반에 대한 눈높이를 더 낮게 만드는 모습이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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