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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신라이프] 호신술을 배우고 나면 되레 두렵다

현대사회는 사적 제재가 사실상 금지돼 있는데도 대중은 늘 ‘가장 실전적이고 최강인 무술은 무엇인가’란 오래된 궁금증을 결코 내려놓는 법이 없다. 왜일까. 나는 그 이유를 ‘두려움’에서 찾는다.

이 두려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피해자가 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떤 무술이나 호신술을 배울 것이냐 하는 문제는 이들에게 무의식적인 생존수단의 선택이다. 나의 선택이 정답 또는 최선이 아니라면 그만큼 내가 패하거나 극단적으로는 ‘죽임을 당할’ 위험성이 커지는 셈이다. 이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로 배우고 익히지 않더라도 무엇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인지 늘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변함없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어도 되는지 계속 의심한다.

그렇게 자신을 지키고 살고자 하는 힘을 얻기 위해 무술과 격투기를 배우고 무기를 손에 넣어서 안심이 되면 좋으련만, 우리는 대개 거기서 두 번째 두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내가 과연 이 힘을 컨트롤할 수 있는가?’ 하는, 가해자가 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처음엔 점점 강해지는 자신을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고 여기다가도, 슬슬 그 힘을 시험해보고 싶은 욕구에 빠지기 쉽다. 무술 격투기 하는 사람 사이에서 일상생활에서 문득 지금 눈앞에 보이는 누군가를 어떻게 공격할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이 들더란 얘기는 흔하게 들을 수 있다. 특히 칼이나 총과 같은 무기는 인간이 수십년의 단련으로도 얻기 힘든 ‘힘’을 손쉽게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소위 ‘칼에 먹힌다’라고 표현하는 상황까지 가기도 한다.

그렇게 어느 순간 자신이 의도치 않게 힘을 쓰고 예상을 벗어나는 나쁜 결과가 일어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그 피해 대상이 자기자신 또는 주변인이었다면 그때부터 그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더 부담스럽고 두려운 트라우마가 된다.

맨손 무술 격투기는 그나마 대련과 경기를 통해서 힘을 전심전력으로 써보면서 사전에 그런 욕구를 발산시키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무기의 경우엔 그게 안 된다. 물론 유사 대련에서나 빈 깡통, 짚단 등 미생명체를 대상으로 힘을 써보는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 살상력을 온전히 발휘해볼 수 없는데 이게 결국 심리적 불안이 된다.

그래서 소위 현대의 ‘무도’ 수련은 철저하게 현실과 수련을 구분하고자 격식을 갖추게 됐다. 수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복장을 바꿔 입고 명상을 하고 어떤 대상을 향해 절을 하는 등의 행동, 수련을 마친 후 청소를 하는 등의 관습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사실상 현실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았다가 다시 돌려놓는 일종의 ‘의식’ 같은 행위다.

수련은 ‘힘’을 통제하던 마음을 제한적으로나마 의식적으로 해방시키고 또다시 잠글 수 있게 하는 연습이고, 도장은 그것을 위한 ‘이세계’다. 매트를 신성시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도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이세계 안에서는 우리는 우리가 가해자로 또는 피해자로 두려워하는 힘을 가능한 수준에서 직면하고 경험하며 그 힘을 담아내고 다뤄낼 수 있는 능력과 여유라는 그릇을 빚어나감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김기태 A.S.A.P. 여성호신술 대표강사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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