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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어디’가 아니라 ‘어떻게’

전부는 아니지만 경험은 분명 소중한 자산이다. 혼란스러운 선택의 기로에서 적절한 결정을 도와주고, 사물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각도 길러준다. 필자는 변호사생활을 하면서 고용, 개업, 합동, 소형·중형·대형 로펌 등 다양한 형태의 법률사무소를 경험했다. 더하여 대한변협회장과 서울지방변호사회장으로 연이어 활동했기 때문에 변호사업계 사정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서 개업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했었다. 더 배우자는 생각으로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 고용변호사로 취업했다. 원칙적이고 성실하신 선배 밑에서 도제식 교육의 혜택을 누렸다. 사무실 구성원 모두 가족 같아서 야근이나 휴일 근무도 힘든지 몰랐다. 사건 결과에 감사한 의뢰인이 보내준 배추 몇 통을 나누면서 사무실에 웃음꽃이 필 정도 행복했다.

당시는 보통 2년 정도 지나면 독립해 개업하는데, 호흡이 잘 맞아서 모시던 선배 변호사와 동업을 하였다. 연수원을 막 수료한 후배 변호사도 채용했다. 유능한 인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느꼈다. 후배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배운 것을 누군가에게 다시 전수한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했다.

후배 변호사가 독립할 때쯤 의기투합하여 작은 법무법인을 만들었다. 법무부 인가도 받고 사무실도 넓은 곳으로 이전하며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법무법인이라고 새긴 명함을 보면 왠지 가슴이 뿌듯해졌다. 실제로는 약간의 확장이었지만 마치 전문성을 갖춘 로펌이 된 듯한 기분으로 일했다.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일했던 시절이었다.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소형 로펌이 가진 한계에 다다를 즈음, 마음이 맞는 로펌들과 합병을 하였다. 변호사 숫자가 70명이 훌쩍 넘는 중형 로펌이 되었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높은 건물에 여러 층을 사용하였는데 외국 영화에 나오는 로펌 변호사가 된 듯했다. 구성원 수가 많으니 배울 만한 멘토들도 많았다. 날마다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배우는 것이 행복했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마치며 진로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했다. 쳐다보는 눈이 많아져서 신중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임기를 끝내자마자 다시 법정에서 소속 회원들과 논쟁하거나 사건 수임을 위해서 돌아다니는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지원이 가능한 대형 로펌에 적을 두고 공익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들었다. 종전 사무실 구성원도 흔쾌히 양해해 주었다. 변호사의 사회적 기여는 소송 수행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물적·인적 조직이 풍부한 대형 로펌의 경우 다양한 공익활동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여야 하고, 실제로 하고 있다. 요즘 로펌 내부의 공익위원회와 공익법인 온율의 각종 활동에 참여하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 수 있음에 무척이나 행복하다.

꼼꼼히 읽으신 독자분들은 발견하셨겠지만 이 글의 모든 문단은 “행복했다” 혹은 “행복하다”로 끝난다. 이처럼 변호사로서 느끼는 행복은 사무실의 규모나 수입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달려있다. 세상사 이치가 비슷할 테니 기업도 동일하리라 본다. 어려운 시대에 창업이나 취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행복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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