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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호의 현장에서] 도시재생의 허와 실

“유럽은 100년, 200년 전 건물도 아직까지 잘 사용하는데 왜 30년이 된 아파트를 재건축해야만 하나?”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그리고 정부의 대규모 공급을 골자로 한 새 부동산대책 발표와 맞물려 조심스럽게 나오는 반대 목소리의 골자다. 낡았다고 허물지 말고 수리·보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1970년대나 80년대에 지어진 허름한 건물, 주택도 나름 그 당시 시대상과 역사를 담고 있다는 감성까지 더해진다. 이런 목소리는 불과 반년 전까지 정부, 그리고 서울시 도시정책의 골자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완전히 새 마을을 만드는 ‘뉴타운’ 정책이 중간에 멈추고, 그 자리를 ‘도시재생’사업이 대신하게 된 이유다. 서울에 파리, 베를린, 런던 같은 유럽식 도시정책을 이식하는 시도였다.

박원순 전 시장이 홍수로 물에 잠긴 독일의 한 도시 사진과 함께 “제 눈에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들어오네요. 우리 서울도 저렇게 아름다운 도시 만들어내겠죠?”라는 글을 SNS(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비판을 받았던 일도 이 같은 신념이 깔린 결과다.

지난 10여년간의 ‘도시재생’사업은 결과적으로 많은 것을 남겼다. 소위 ‘달동네’였던 서울 도심 속 단독 단지 몇몇 곳은 알록달록 벽화와 함께 한때 관광명소로 주목받았다. 또 몇몇 동네에서는 너무 낡고 불편해 소유주조차 외면했던 붉은 벽돌 주택이 보수공사와 함께 임대주택으로, 또는 도심공원이나 텃밭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사이 서울의 대다수 주택은 속절없이 나이만 열 살 넘게 더 먹어갔다. 1970년대 만들어진 최소 40대 중반의 주택만 15만호가 넘는다. 지금 20대들은 교과서에서만 봤던 1980년대 만들어진 것도 40만호 이상이다. 전체 서울 주택의 약 19%다.

문제는 이들 주택이 만들어질 당시의 안전 기준, 건축기술, 기대수명이다. 같은 시멘콘크리트 건물이라 해도 지금 만드는 건물의 기대수명과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후진 개도국 시절 만든 건물에 같은 수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또 30~40년 사이 급속하게 늘어난 소득, 그리고 생활문화 발전이 가져온 주택 수요 변화도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다. 요즘 만들어진 새 아파트나 견본주택을 방문해본 사람의 눈에 30, 40년 된 낡은 단독주택, 연립, 아파트는 벽지를 새로 하고 리모델링 공사를 몇 번을 해도 ‘불편한’ 곳 그 자체일 뿐이다.

마침 정부는 과거 뉴타운 정책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는 내용의 대규모 주택 공급대책을 발표했다. 공공성 강화라는 차별성을 부각하고자 노력했지만 과거에도 공공기부, 채납제도가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서울을 전반적으로 리모델링한다는 큰 틀 자체는 변함없다.

문화유산과 불편하다 못해 안전까지 위협하는 오랜 건물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개발이라는 단어 자체에 반감을 가진 일부 열혈지지층의 목소리에 10년간 호응했다면 이제는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더 많은 사람들의 희망에 귀를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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