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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빌 클린턴 후보가 한 말이다. 냉전 이후의 시대는 경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는 비전을 함축한 말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20년 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자리 감소와 경제불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집값만 고공행진 중이다. 불황이라도 갈 곳 없는 돈이 시중에 넘쳐나니 그래도 믿을 것은 부동산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클린턴이 지금의 한국을 보면 “바보야! 문제는 집이야”라고 일갈할 것 같다.

정부는 최근 연간 19만여가구의 공공임대 및 분양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청년, 신혼부부, 저소득층 등을 위한 공공임대 85만가구와 일반 공공분양 15만가구 공급을 위한 주거복지 로드맵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전국에 공공임대 11만4000가구를 단기간 확대 공급한다는 전세대책을 발표했다. 이렇듯 다양한 방법으로 주택 공급 확대를 꾀하고 있지만 문제는 과열된 수요에 비해 공급량과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집’인 걸 알겠는데 뾰족한 수가 안 보이니 정부나 국민이나 모두 답답하다. 번질 대로 번진 큰불을 정부가 서둘러 진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커 보인다. 시장의 힘에 맡기는 것도 불을 더 키울 것 같아 불안해하는 듯하다. 과연 집값도 잡고 세입자의 거주권도 보장하면서 전세 문제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도, 국민도 세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뉴턴의 작용과 반작용 법칙처럼 한쪽의 처방이 다른 쪽에는 부작용을 가져오곤 한다. 정부의 부동산대책을 옹호하는 쪽이나 비판하는 쪽 모두의 주장에서 뾰족한 대안을 찾기도 쉽지 않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난감한 주택 문제를 마주하며 우리는 원론으로 돌아가 집의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알듯이 집은 ‘삶의 공간’이며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을 위한 최소 요건이다. 집이 투기꾼의 먹잇감이나 일부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제 ‘집’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할 때다. ‘살(buying)’ 집이 아니라 ‘살(livable)’ 집이 돼야 하며, 투기 대상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편안하게 거주할 수 있는 기본적 공공재화로 인식해야 한다. ‘내 돈 주고 내가 산다’는데 쓸데없이 왜 규제하느냐는 불만보다는 공존하며 살아야 하는 이웃의 주거 문제에 공감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집 문제를 개인의 양식에 맡기는 것은 온당치 않으며 효과도 적다. 그러나 집을 투자나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이상 집값 안정은 요원하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시장을 왜곡해 집값 문제를 키운다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시장 기능에 의해 수요자에게 적정 분배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집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에 대한 기대감을 근본적으로 제어하고 앞으로 공급하는 신규 주택들이 로또분양이 되지 않도록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공공택지 등에서 싸게 분양되는 주택들의 경우 건설업체나 수분양자가 과도한 차익을 전유하는 것은 개선돼야 한다. 이는 분양시장의 과열을 막고 차익의 일부가 청년이나 무주택 서민을 위한 공공주택 공급을 늘리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매입·전세임대 등 불안해진 전월세시장에 기민하게 대응하거나 지분형 주택 등 내 집 마련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주택도 서둘러 확대 공급할 필요가 있다. 주택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비판적이되 생산적인 논의와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미로에 빠진 주택 문제 앞에서 이제 집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집을 소유하든, 세를 살든 편히 거주할 수 있는 집 본연의 역할을 중시해야 한다. 인식을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고 꼬일수록 첫 매듭부터 살펴야 한다. 이제 ‘집이란 과연 무엇인가’ 에서부터 생각을 시작하자.

윤정중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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