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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의 은밀한 방의 탄생

작가 제인 오스틴(1775년~1817년)이 소설 ‘오만과 편견’을 쓴 곳은 집의 거실 겸 응접실이었다. 눈이 나빴던 작가는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쪽에 아버지가 스무살 때 선물한 ‘글쓰기 상자’를 호두나무 탁자 위에 올려놓고 글을 썼다. 자기만의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에 따르면, 17세기 말까지는 아무도 혼자 지내지 않았다. 침실도, 침대도 공용이었다.18세기 들어서야 개인의 공간, 은밀한 방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테리어 산업이 생기고 편안한 소파와 비밀 서랍이 갖춰진 책상이 제작되는 등 가구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18세기의 방’(문학동네)은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28명이 회화와 문학을 중심으로 들려주는 18세기 방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와 역사를 담고 있다

개인공간이 생기면서 새로운 종류의 방도 생겨났는데, 특히 귀부인들의 전유물이었던 ‘화장방’은 유명세를 탔다. 화장방은 말 그대로 잠자리에서 일어난 여성이 몸을 치장하는 별도의 방이지만 응접실로 쓰이기도 했다. 애인과 물건을 팔려는 상인들, 그 밖의 다양한 이유로 부름을 받고 온 사람들이 다 모인 공간이다. 과시용인 화장방은 일본식 옻칠 화장대, 중국풍 병풍, 인도산 면직물, 터키산 카펫 등 온갖 이국적인 것들로 채워졌다.

18세기엔 벽난로가 본격적으로 가정에 보급되는데, 여성의 소설 소비와 벽난로의 상관성이 눈길을 끈다.

식당이 부르주아와 귀족의 저택에 들어서게 된 건 18세기 중반이다. 언제든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 작은 방으로, 식당이 따로 없는 경우 응접실을 활용했다. 귀족의 식당을 그린 그림에는 고급스러운 식기와 상품들이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소비문화를 엿볼 수 있다. 반려동물을 본격적으로 기르기 시작한 것도 18세기이다. 오늘날 주거생활의 뿌리가 개인이 탄생하는 시기인 18세기에 닿아있음을 볼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18세기의 방/민은경 외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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