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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노력은 됐고, 똑같이 나누자?

“지속가능하고 보다 평등한 경제는 제도의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실질적 민주주의입니다.” 지난달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6·10 민주항쟁 기념사 중 한 부분이다. ‘평등 경제’라는 낯선 개념에 고개를 갸웃했는데, 마침 청와대 대변인이 이튿날 설명을 더 했다. 대변인은 “평등경제는 우리 경제의 핵심 기조인 포용적 성장과 공정경제의 연장선에 있는 말”이라며 “경제 민주주의의 코로나 버전”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평등 경제’를 외친 날, 정부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여당은 다음날 “20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공정거래 입법을 21대에서 완성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제 정의를 실현할 것”이며 “공정 경제와 규제 혁신의 양 날개를 펼칠 것”(김태년 원내대표)이라고 강조했다. 거창해 보이는 단어들의 조합과 부유 속에 한 가지 뚜렷해 보이는 게 있었다. 176석 슈퍼여당과 임기 후반부로 접어든 청와대는 우리 경제에 ‘정의’와 ‘공정’과 ‘평등’의 색깔을 무척 입히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열흘 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1902명의 보안검색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자회사로 보안검색요원 전원을 편제할 계획이었다가 이를 직고용 형태로 갑자기 전환했다. 정규직 직원들과 취준생들은 원칙도 없는 ‘로또채용’이라며 분개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중단’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와 26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열흘 가까이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공사는 1일 이들의 직고용 절차를 시작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들끓는 청년들의 분노에 해법 제시도 못한 채 오히려 기름만 부었다.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장기적으로 더 많은 취준생에게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명했는데, 마치 2년 전 소득주도성장으로 각종 고용·가계소득 지표가 악화되자 “최근의 지표는 오히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역설하는 것”이라고 한 청와대 정책실장의 궤변만큼이나 황당하게 들렸다. “조금 더 배워 정규직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게 오히려 불공정”하다는 여당 중진의원의 말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현 정권의 경제기조가 소득주도성장에서 포용 성장, 평등 경제로 조금씩 변화하면서 성장보다는 분배 쪽으로 더욱 기우는 모양새다. 높이 매달려 있는 좋은 열매를 따기 위해 열심히 나무를 오르는 이들에게 ‘노력은 됐고, 똑같이 나누자’며 나무 밑동을 베어버리는 게 평등은 아닐 것이다. 단칼에 나무를 쓰러뜨리면, 당장 모두가 배부를 순 있어도 후손이 따먹을 과실은 자라나지 않는다. 노력 없이 달콤함을 맛본 사람들은 두 번째 나무를 누군가 베어줄 때까지 손놓고 기다릴 것이다. ‘무원칙 평등’의 학습효과다. 인국공 사태에서 청년들이 분노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실력으로 평가받는다는 보편적 가치가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이런 믿음까지 부정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소통과 갈등 관리에 실패한 채 사태를 방치한다면 정부가 지향하는 공정하고 평등한 경제도, 그래서 정의로운 결과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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