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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산책] 반지성주의의 공포

거짓말쟁이를 혼내주는 또 다른 거짓말쟁이가 등장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트윗 해고를 당했던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을 흔들며 나타난 것이다.

트럼프는 집권 이후 시행착오를 거쳐 구축된 시스템에 대한 거친 무시, 공적 이익으로 포장한 대통령과 측근의 이익추구, 주류세력에 대한 백인 저소득층의 반감을 부추기고 편을 갈라 통치에 활용해왔다. 그의 분열적 행동은 언론의 단골 소재가 된 지 오래다. 국제 이슈에 대한 그의 대응은 보고 듣기 민망할 정도다. 미국 정치의 타락은 지성이 타락한 결과라는 내부의 아픈 지적도 있었다.

재선을 위해 북한을 이용하려 했던 트럼프의 뻔한 의도를 알고 있었던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의 키를 쥔 트럼프의 공명심을 이용해 제재 일부 해제라도 얻어내서 평화의 돌파구를 열고 비핵화의 길을 가겠다는 부푼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림없는 일이었음이 입증됐다. 재를 뿌릴 각오로 협상장을 지킨 사람이 있었으니….

출간 전부터 사전 예약 등으로 대박 조짐을 보이던 초강경 매파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The room where it happened’는 언론들이 사전에 입수한 내용을 릴레이 보도함으로써 엄청난 홍보를 해준 덕에 출간하자마자 아마존, 반디앤루이스 등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단숨에 꿰찼다.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논란의 소지가 큰 주장이라는 비판에도 언론의 관심은 계속됐다. 이것이 볼턴의 노림수였던 것 같다. 볼턴이 돈 좀 만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트럼프와 볼턴, 이 두 사람은 미국의 반지성주의 현대적인 상징으로서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지적했던 원시주의, 지성에 대한 경멸, 성공 일변도의 사업가 정신이 혼재돼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그들은 무역과 전쟁 또는 협력과 경쟁을 통해 이 반지성주의를 지구촌 곳곳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지성주의에 기반을 둔 지도자가 등장해 제동을 걸거나 내분으로 자멸할 때까지 이 혼란은 계속될 것 같다.

우방국이라면서 방위비 폭탄 씌우고 장사할 생각만 하는 트럼프나 미국우선주의를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운명쯤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전쟁놀이를 즐겨온 볼턴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지 싶다. 글로벌 패권국의 반지성주의 악취가 지구촌을 얼마나 괴롭히고 흔들어 놓을지 생각만 해도 화가 난다.

더욱 무서운 것은 볼턴의 주장은 미국 주류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네오콘의 패권 의식과 이념 지향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글로벌 원톱으로 부상한 미국의 금권정치와 전쟁중독증을 당당하게 고백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한국전쟁의 휴전협정 당사자인 미국이 한민족의 운명을 눈곱만큼도 신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비참하기까지 하다.

볼턴 회고록에는 ‘KOREA’라는 단어가 700여차례 등장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의 문제와 관련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한편으로는 글로벌 패권국 아메리카합중국 권력의 민낯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구경 중에 싸움 구경이 제일이라는데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트럼프의 신념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다음 수순은 어떻게 진행될까? 당신들끼리의 싸움은 맘껏 하시라. 그러나 투전꾼처럼 남들 싸움시켜 놓고 싸움판에 끼어들어 주판알 튕기는 일은 좀 역겹다. 가능하면 전쟁놀이보다는 스포츠를 즐기라고 충고하고 싶다. 이미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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