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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 기부문화의 진화, 사람은 왜 기부를 하는가

사람의 본성은 원래 착해서 아무 관계 없는 이웃들에게 자선, 선행을 베푸는가? 인류의 먼 조상과 비슷한 여건에서 생활하는 원시부족이 친인척이 아닌 타인을 이롭게 도와주는 기부행위의 진짜 동기는 무엇인가?

일부 인류학자는 아프리카 사막 등 오지에서 원시생활을 하는 씨족마을 주민의 기부행위를 조사했다. 오랜 관찰 결과, 오지마을 종족이 과일 등 식량 생산이 풍년이 들었을 때 인접한 이웃 부족에게 식량을 나눠주는 기부행위는 자선심이 이유가 아니고 향후 자기 씨족이 흉년이 들었을 때 이웃 씨족으로부터 식량을 나눠 받기 위한 ‘호혜적 기부행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종교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의 기부행위는 신앙공동체를 통해 확대, 발전하기 시작했다. 유대교는 교리에서 “유대인 동족을 형제들처럼 대하라”고 율법으로 정했다. 곤경에 빠진 유대인 동족을 돕는 기부행위는 구원을 위한 신앙으로 강제한다.

실제 전 세계에서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민족은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이 2500년 동안 세계 각국에서 종교적 박해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살아남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동족에 대한 강제적 상부상조 기부제도라는 분석도 있다. 유대인이 세계 각지에서 기업인으로 성공하는 이유 또한 유대인 동족에게는 형제들처럼 정보 제공과 편의 제공을 강제하는 유태 율법에 의한 자발적 재능 기부에 기인한다. 신앙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기부행위는 아브라함을 공동의 조상으로 삼는 기독교도, 이슬람교도에게 역시 종교적인 의무이고 구원의 중요 수단이다. 불교에서도 보시를 많이 하면 선업(善業)으로 다음 생에 복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기부행위는 종교적 구원을 약속하는 기능 외에 구성원 상호 간의 호혜적인 복지제도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대 중국의 유가(儒家)에서 공자는 대동사상(大同思想)을 기반으로 농지를 균등하게 배분하는 정전제(井田制)를 이상적인 복지와 조세정책으로 주장했다. 다른 신앙공동체처럼 기부 문제를 종교 교리로 뚜렷하게 두고 있진 않지만 맹자가 인간 본성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근거로 주장했던 성선설(性善說)은 주목할 만하다.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아이를 보게 되면 누구나 이웃 또는 아이 부모의 칭찬을 생각하지 않고 아이를 구한다.

최근 글로벌 자본주의의 폐단으로 승자독식 현상의 심화, 소득 분배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서 기부는 민족과 국가공동체를 넘어 인류공동체를 대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의 빌 게이츠, 워런 버핏 같은 부자들은 아프리카 등 후진국 주민을 위해 수조원을 낸다. 우리나라 방송 채널에서도 글로벌 시민단체들의 후진국 기부금 모금 광고가 넘친다.

21세기에 들어와 기부행위는 ‘기부문화’ 또는 ‘기부경제’로 진화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의 수단으로 기부를 실천하고, 임직원의 자원봉사를 강조한다. 근로자, 개인 역시 기부와 자원봉사는 따뜻한 공동체 사회를 위한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하고 있다. 2018년 국세청에 신고된 기부금액은 약 13조8000억원이다. 심리적 보상, 사회적 위신 등이 동기가 된 경우도 있지만 선행을 통한 자아실현 목적이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선량한 기부자를 배반하는 기부금의 유용과 개인적 사용이 쟁점이다. 가관인 점은 피해 노인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적반하장의 패륜적 태도다. 일부 시민단체가 설립 취지와 달리 돈, 권력, 명예에 야합하는 세속적 퇴행은 기부문화 발전에 찬물을 끼얹는다. 정의와 평화라는 선한 취지를 앞세워 모금한 돈을 개인적 용도로 남용한 시민단체의 위선과 부도덕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행정적 개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기부금 빙하기일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일부 시민단체의 탈선은 기부시장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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