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코로나19 시대, 리처드 용재 오닐의 위로와 기도
리처드 용재 오닐은 지난 26일 열린 '당신을 위한 기도'에서 "투데이 이스 베리 ‘특별한’ 데이 투 미"라며 서툰 한국말과 능숙한 영어를 섞어 소감을 전했다. [마포아트센터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앙코르 곡은 ‘섬집아기’였다. 비올라 선율은 잔잔한 물결을 이루며 공연장을 채웠다. 리처드 용재 오닐(42)의 연주는 딱딱하게 단련된 마음을 무너뜨리는 힘이 있다.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은 그의 연주는 ‘손의 향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낮은 숨을 고르듯 현이 스치는 소리는 용재 오닐의 숨소리처럼 다가오고, 그 위로 쌓이는 아름다운 연주는 그 자신처럼 느껴진다. 짧은 앙코르 곡이 목적지에 닿기도 전 객석은 결국 눈물을 떨어뜨리고 만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한 진심의 위로였다.

연주를 마친 리처드 용재 오닐은 검은 마스크를 낀 채 다시 무대로 나왔다. ‘금기’는 깨졌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오늘은 매우 특별한 날”이라고 말했다. 기나긴 감염병의 위협을 견뎌낸 뒤 찾아온 무대이기 때문이다. 공연 전 그는 소속사 크레디아를 통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공연이지만, “만약 이 공연이 취소된다고 해도 힘들어하진 않겠다”며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오랜 시간 움츠렸던 공연계는 리처드 용재 오닐의 공연과 함께 다시 첫발을 뗐다. 감염병의 재확산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수도권 공공다중이용시설 운영 중단 권고’를 발표하기 전,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진행된 공연이다.

마포아트센터는 733석 규모의 ‘아트홀 맥’을 거리두기 좌석제로 350석만 열어두고 관객을 받았다. 여전히 잦아들고 있지 않은 코로나19의 위협에 관객들은 공연장 입구부터 1m 간격으로 표시된 대기선을 따라 섰다. 국내 공연장 최초로 스마트폰 QR코드를 도입,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 뒤 문진표를 작성하게 했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사람의 손을 통한 모든 접촉을 피하기 위해 도입한 방식이다. 자동 분사식 손 세정기를 설치한 것도 마포아트센터만의 특이점이었다. 스마트하고 안전한 공연 관람 문화를 도입한 사례였다.

[마포아트센터 제공]

당초 공연은 리처드 용재 오닐의 독주회였으나,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며 용재 오닐은 공연명을 ‘당신을 위한 기도(Pray for you)’로 바꿨다. 연주 프로그램도 직접 변경했다. 이날 무대는 ‘위로’와 ‘기도’라는 공연 취지에 맞게 클래식을 잘 알지 못하는 관객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편안한 곡들로 프로그램이 다시 짜였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와 ‘마왕’, 오펜바흐 ‘재클린의 눈물’,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중 왈츠 등을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5)와 러시아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코프스키(36),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함께 했다.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지닌 연주자인 리처드 용재 오닐에게도 코로나19 시대는 낯설고 생소한 것이었다. 미국 뉴욕에서 거주 중인 그는 이번 공연을 진행하기 위해 이달 초 입국, 2주간 자가격리까지 거쳤다. 용재 오닐은 공연 전 소속사를 통해 “두 달여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자만을 위해 연주하는 것이 싫어 악기를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며 “어둡고 외로운 침묵의 시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을 위해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 제가 바라는 전부”라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왼쪽)와 리처드 용재 오닐 [마포아트센터 제공]

간절한 마음과 기도의 심경으로 오른 무대에서 용재 오닐은 “지금은 세계 어느 곳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며 “이 순간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겠다”며 두 번째 앙코르 곡을 연주했다. 양인모가 다시 무대로 나와 두 사람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호흡을 맞췄다. 2015년 6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흑인교회 총기 난사 희생자 장례식에서 부른 이 곡이 코로나19 시대에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위로의 울림을 전했다.

sh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