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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세한 여론조사 기관 경쟁…조사 품질 낮춰”[여론조사를 조사하다]

[헤럴드경제=기획취재팀] “여론조사 가격 덤핑(싼 가격에 판매하는 행위)은 정말 심각합니다. 대형 회사는 그들대로 언론사를 상대로 덤핑을 하고 자동응답시스템(ARS) 조사 업체 중 신규 업체들은 통신비만 받고 초저가로 영업을 하다보니, 정상가격을 받는 업체들이 점차 시장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낮은 수임료로 인해 조사 품질이 낮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21대 총선 관련 언론사 여론조사시 ARS 방식을 거의 공짜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기관들이 있었다는 것은, 업계에서 공공연히 떠도는 얘기입니다.”

국내를 대표하는 여론조사 업체 임원들의 푸념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 여론조사도 대부분 언론사 의뢰로 진행됐는데, 심각한 가격 덤핑 사태가 빚어지면서 여론조사의 품질이 하락했다는 지적이다. 83곳(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등록 기준)이나 되는 기관들의 난립 속에, 언론사들 ‘가격 후려치기’까지 겹쳐지면서, 신뢰성 높은 조사를 기대하기 어려워진 모양새다.

정치 위주 여론조사 업체들 평균 자산 규모…약 12억원

헤럴드경제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이하 여심위)에 등록된 여론조사 기관 83곳의 자산 규모를 파악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국세청에 신고된 자료 등을 확인한 결과(공개 시점의 차이로 기관간 비교 기준연도는 상이함), 이들 여론 기관 중 ‘정치 위주 여론조사 비중이 높은 기관’의 자산 규모가 ‘기업 마케팅 여론조사를 다수 수행하는 기관’보다 작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업계에서 국회의원 선거·대통령 선거 등 정치 관련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업체로 거론되는 기관은 9곳이다. 리얼미터, 조원씨앤아이, 리서치뷰, 케이에스오아이(한국사회여론연구소), 리서치앤리서치, 우리리서치, 윈지코리아컨설팅, 유앤미리서치, 타임리서치 등이다.

실제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정치 위주 기관들은 다수의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여심위 등록 기준으로 리얼미터가 98건, 조원씨앤아이가 93건, 리서치뷰가 61건, 케이에스오아이(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59건, 리서치앤리서치가 20건 순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9곳의 정치 여론조사 전문 기관들의 평균 자산 규모(자산이 공개된 가장 최근 연도 기준)는 약 12억원 수준이다. 조원씨앤아이가 12억3500만원(2017년 기준), 케이에스오아이가 10억6200만원(2019년 기준), 리서치뷰가 1억원(2016년 기준) 등의 규모를 기록했다.

이들 여론조사 기관은 칸타코리아,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한국리서치 등 기업용 마케팅 여론조사 비중이 높은 곳들에 비해 규모가 영세하다. 2019년 기준 자산 규모를 보면 칸타코리아는 436억원, 한국갤럽조사연구소는 312억원, 한국리서치는 250억원 수준이다.

정치 위주 여론조사를 하는 기관들은 낮은 순이익 수준이 지속되면서 자산 규모를 확대하기 어려워진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케이에스오아이는 97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냈고 2018년에는 2억6900만원 수준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 기관은 19대 대선이 있던 2017년과 20대 총선이 있던 2016년에는 모두 1000만원 가량의 당기순이익만 냈다. 리서치앤리서치는 2018년 2억2700만원, 우리리서치는 2018년에 5600만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여론조사 기관 규모 작은 이유…지속되는 가격 덤핑 구조

정치 위주 여론조사 기관들이 순이익을 크게 내지 못하는 이유는, 국회의원·대통령 관련 여론조사가 ‘헐값’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총선과 대선 등의 여론조사는 주로 언론사의 의뢰로 진행되는데, 이때 언론사들은 여론조사 기관들의 보도를 전제로 가격을 후려치는 경우가 잦다.

정치 위주 여론조사 기관들에게 조사 가격은 얼마일까. 헤럴드경제는 표본 1000명 전국 조사를 기준으로 ARS와 전화면접 각각에 대한 가격을 문의했다. 기관들은 ARS 조사에 350만원~550만원을 제시했고, 전화면접의 경우 1200만~1300만원이 든다고 밝혔다. 전화면접의 경우 “높아진 최저임금을 감안해 표본 1명당 1만2000~1만3000원의 가격이 드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여심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전국 아닌 특정 지역구 기준으로 여론조사를 할 때는 표본을 최소 500명 이상 확보해야 한다. 500명에 대한 ARS를 할 경우에는 250만원 수준으로 가격이 낮아지고, 전화면접을 할 경우에는 600만~650만원이 든다고 제시했다. 언론사들의 요청에 따른 여론조사는 가격을 30% 이상 낮출 수 있다고 덧붙이는 경우도 빈번했다.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는 “거의 이윤을 남기지 못하고 조사를 수행한다고 보면 된다”며 “방송사처럼 돈을 지불할 역량이 되는 언론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최대한 저가로 조사를 의뢰 하다보니, 어떤 여론조사 업체는 ARS의 경우 무료 수임 제안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언론사인데다가, 한번 조사를 수임하면 계속 수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어 가격을 높여 부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래픽 디자인 권해원]

결과는 여론조사의 질 하락

낮아진 비용 구조는 여론조사의 정확도를 떨어뜨린다. ‘검증’이 부실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최근 논란이 된 알앤써치의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을’(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 미래통합당 심재철 의원 등 지지율 조사) 조사가 대표적이다. 해당 조사는 경인일보와 MBN의 의뢰로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다. 경인일보 의뢰 조사는 3월24일~25일 2일간, MBN·매일경제신문 의뢰 조사는 3월23일~25일까지 3일간 진행됐다. 그런데 경인일보 의뢰 조사만 공표되고, MBN·매일경제신문 의뢰 조사는 공표되지 않았다. 같은 기관에서 동일한 날짜에 조사했음에도 경쟁 후보들 간 지지율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게 논란이 됐다.

여심위 관계자는 “MBN·매일경제 의뢰 조사 과정상 에러가 발견돼 공표를 못 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역시 시간적 여유를 토대로 다수 인력을 투입해 검층 절차를 거쳤어야 하는데, 영세한 업체들이라 검증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해 발생한 문제”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0월 나온 한국통계학회의 논문 ‘선거여론조사의 객관성·신뢰성 제고를 위한 조사방법론 개선방안 연구’에서 연구진들(박인호 부경대 통계학과 교수, 임종호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교수, 박민규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은 “현재 선거 여론조사에서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조사 비용의 현실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자료 수집 비용 뿐 아니라 체계적인 관리·분석 비용도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016년 미국여론조사협회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받은 스콧 키터(Scott Keeter) 퓨리서치센터 선임조사 고문 역시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여론조사 기관들이 비용 걱정 때문에 ARS 조사를 하는 것으로 안다”며 “사실 투표 조사는 비싸고, 좋은 투표 조사는 매우 비싸다”고 말했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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