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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많이 더 싸게‘의 역설

약 1만2000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지질학적으로 홀로세로 부른다. 그 중 급격한 문명발달을 이룬 최근 2000년을 인류세로 부르기도 하는데, 인류세 대신 자본세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시장지상주의에 중독된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관심을 끈 ‘경제학의 배신’의 저자 라즈 파텔, 생태학과 자본주의를 결합한 연구를 하고 있는 제이슨 무어는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서 “1400년대 이후의 역사를 자본세로 부름으로써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나머지 지구 생명망의 관계를 엮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도발적인 주장은 흔히 자본주의의 시작을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보는 것과 달리 15세기 유럽과 신대륙의 역사에서 찾는 데 있다.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등 일곱 가지를 저렴하게 유지해 지속적으로 거래를 가능하게 만드는 걸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로 본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저렴하다는 건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적은 보상을 주고 동원하는 폭력”으로 해석된다. 이전에는 값이 매겨지지 않은 것까지 화폐가치로 환산해 가능한 적게 값을 매기는 전략인데, 자본주의의 역사는 다름아닌 저렴하게 만들기의 역사라고 본 것이다.

책은 ‘자본세’ 600년의 역사가 어떻게 구축됐는지 파고드는데, 세계 생태계, 저렴함, 프런티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해나간다. 세계 생태계는 “자본주의가 무한 축적이라는 힘에 추동되어 프런티어를 지구 전역으로 확장한 생태계”로 정의한다. 이를 통해 폭력과 착취, 불평등이 심화된 과정을 살핀다. 프런티어는 “새로운 저렴한 것들을 확보할 수 있고 인간과 다른 자연의 저렴한 노동을 강제할 수 있는 장소”다. 자본주의는 프런티어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더 많은 곳으로 확장하면서 이윤을 창출한다.

그런데 이 저렴한 세계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생태적인 위기는 더 이상 자연이 저렴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저자들은 저렴한 자본주의의 문제를 타개할 보상과 재분배, 재창조의 새로운 경제를 제안한다. 걸맞는 보상과 보상의 대상, 지불 대상을 새롭게 규정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을 새롭게 이해하는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책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라즈 파텔· 제이슨 무어 지음, 백우진·이경숙 옮김/북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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