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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문 연 공연계…‘디테일’ 부족한 ‘거리두기 좌석제’의 함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 중인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공연장 방역을 하고 있다.[세종문화회관 제공]
예술의전당은 최근 객석 모의 운영을 진행, 가장 안전하면서도 공연단체에도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재개의 기지개를 켠 공연계가 ‘거리두기 좌석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최근 성남아트센터에서 진행될 예정이던 뮤지컬 ‘레베카’는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거리두 중기 좌석제’가 풍파를 몰고 오는 상황이다.

‘레베카’는 뮤지컬 계의 대표적인 ‘매진 공연’이다. 특히 강력한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 옥주현이 서는 무대는 아이돌 그룹의 티케팅을 방불케 할 정도다.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서 지난 8일부터 진행될 예정이던 ‘레베카’ 역시 모든 공연이 일찌감치 매진됐다. 올 2월부터 예매를 진행, 1800석 규모의 공연이 모두 팔려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따라야 하는 ‘거리두기 좌석제’는 공연 기획사를 ‘사면초가’의 상황으로 몰았다.

‘레베카’의 성남 공연은 무대 셋업을 진행하던 중 성남시 재난안전대책본부로부터 띄어앉기 지침을 받았다. 이미 매진된 공연이었던 탓에 ‘띄어앉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공연은 취소됐다. 성남아트센터 측은 “공공 공연장이다 보니 지침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공연을 주관한 에스플레이프로젝트(이하 에스플레이) 측은 무대 셋업이 들어간 상태에서 공연이 취소되다 보니 상당 부분 손해가 발생하는 데다, 매진 공연에서 ‘거리두기 좌석제’를 시행하는 어려움 때문에 속앓이를 했다. 공연 기획사 입장에서 분통을 터뜨린 대목은 디테일이 부족한 원칙 없는 지침으로 서로가 떠넘기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스플레이 측은 “셋업 중 공연이 취소돼 어느 정도 손해는 있지만, 사회적 공감을 하고 있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문제는 이미 1800석이 매진이 됐는데, 지그재그로 앉아 절반을 줄이면, 관객들 중 어느 좌석을 빼고 어느 좌석을 남길 것인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어 “정확한 잣대와 기준이 없는 지침으로 인해 피해는 고스란히 관객이 보고, 관객들과 직접 상대하는 기획사만 원성을 듣고 있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공공 공연장이 아닌 민간 공연장에 올리는 뮤지컬은 거리두기 좌석제를 운영하지 않고 공연을 진행하니 이것도 ‘원칙 없는 지침’이라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소송전까지 비화됐으나, 현재 양측은 공연 연기 일정을 두고 논의하는 것으로 입장을 조율 중이다.

‘레베카’ 취소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방 투어를 진행 중인 ‘레베카’는 22일 막을 올리는 김해문화의전당 공연에서도 ‘거리두기 좌석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에스플레이 측은 오는 6월 진행되는 수원(경기도문화의전당) 공연에도 공문을 보낸 상태다. 에스플레이 관계자는 “거리두기 좌석제를 시행할 것인지, 온전히 공연을 올릴 것인지 지금 답을 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레베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춘향’은 진작에 매진됐으나, 거리두기 좌석제 지침으로 전석 예매를 취소한 뒤 재예매를 진행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공연 역시 전석 매진됐으나, 거리두기 좌석제를 시행할 수 없어 결국 공연을 취소했다.

공연계의 ‘거리두기 좌석제’가 불러온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가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답답한 심경이 묻어난다.

한 공연제작사 관계자는 “이미 티켓이 판매된 공연에 거리두기 좌석제를 하라는 것은 사실상 공연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며 “좌석의 50%만 운영할 경우 그만큼 수익은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그 손해는 온전히 제작사의 몫이 된다”고 말했다. 대학로 소극장의 경우 거리두기 좌석제로 8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고작 10명 정도의 관객만 받게 된다. 대학로 소극장 관계자는 “권고가 내려오니 따르고 있지만 사실상 공연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현장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침만 보낸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그재그로 좌석을 운영할 경우 대부분의 공연장은 유료 좌석수가 50% 정도다. 공연 단체의 입장에선 수익을 보장할 수 없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대개 작품의 손익 분기점은 좌석 점유율로 치면 50~60% 정도다. 초연이면 60%, 재연, 삼연의 잘 나가는 공연은 30%가 된다”며 “특히 대학로 극장가는 평일엔 관객이 없고, 주말에 공연장을 꽉 채워 관객을 받는데 거리두기 좌석제로 유효 좌석이 50% 나온다면 공연 단체 입장에선 (매출 측면에서) 불안하고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에선 이에 공연 관람 문화의 특성을 반영해 ‘거리두기 좌석제’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객석 모의 운영을 진행, 가장 안전하면서도 공연단체에도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유 사장은 “낯선 사람과 한 칸씩 띄어앉되, 동행과 앞뒷줄은 기존대로 유지해 70%의 점유율이 나오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부 사항이 부족한 ‘거리두기 좌석제’를 운영하기 위해선 코로나19 시대에 맞는 정책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김명곤 연출가는 “현장 예술가들은 한 달만 수입이 끊어져도 생계 유지가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다”라며 “‘레베카’ 사례처럼 공연이 취소될 경우 제작사는 죽고 사는 상황이 된다. 전석 매진된 공연을 국가 지침으로 취소하는데, 제작과 준비 과정에 들어간 지출은 누가 보상할 수 있겠나. 이번 사태로 제작사와 기획사 등을 지원하는 계기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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