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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사회적 거리, 물리적 거리, 심리적 거리

에드워드 홀의 저서 ‘침묵의 언어’에는 공간의 언어라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유기체적 영토·영토권 등의 용어와 함께 설명하고 있는데, 요즘 세상에서는 자신의 집이 대표적인 영토이며 직장에서라면 자신의 자리나 방이 영토가 됩니다.

집이 큰지 그렇지 않은지, 자기 사무실이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자기 자리가 큰지가 자신의 영토를 외부에 보여주는 일이 됩니다. 어쩌면 여전히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영토 확보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당도 있는 큰 집에 살고 싶고, 자기만의 큰 사무실을 갖고 싶어 합니다.

예전에는 부잣집 아이가 아니라면 방을 혼자 쓰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제는 혼자 방을 쓰는 아이가 많습니다. 대학 기숙사도 전에는 4인실까지 있었지만 점점 1인실을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혼’이라는 말이 접두사가 될 정도로 ‘혼술’이나 ‘혼밥’이 유행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에 대한 연구를 보면 개인 간에 편안한 거리가 있고, 불편한 거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개인적 거리 안에 친밀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오면 무척이나 불편합니다. 개인적 거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회적 거리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고, 공적인 거리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요즘 사회적 거리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병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사회학에서 쓰는 사회적 거리와 의학에서 쓰는 사회적 거리는 다를 수 있습니다.

최근 사회적 거리라는 개념은 같이 사는 정도의 친밀한 사람이 아니라면 모임을 갖지 말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일 때문에도 만나지 말라는 느낌이고, 모이더라도 충분히 떨어져서 있으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비말 감염이 주로 2m 이내에서 일어난다고 하니, 비말감염을 예방하는 사회적 거리는 2m 정도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종교행사를 가든, 무엇을 배우러 가든, 식사를 하든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쉽지 않은 주문입니다. 그냥 집에 있으라는 말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지금 사용하는 사회적 거리라는 개념은 어쩌면 ‘물리적 거리’라는 말이 좀 더 분명한 용어일 수 있겠습니다. 서로 일정한 거리를 떨어져 있으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개인적 공간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현대인은 물리적 거리두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많은 사람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힘들어합니다. 혼자 있는 게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강제로 혼자 있게 되니 답답함이 커지는 겁니다. 혼자 있는 게 좋다고 이야기했던 사람도 개인적 만남이 그리워지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거리 개념에는 심리적 거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심리적 거리도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지는 거죠.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자가 격리를 하거나 스스로 자가 격리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서 우울감과 불안감이 커집니다. 병이 유행하는 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거리두기는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과의 심리적 거리는 줄여보면 어떨까요. 뜸하던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하고, 평소에 안 하던 전화통화도 해보면 어떨까요.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나면 오히려 사람이 더 소중해지기 바랍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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