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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우려되는 '나도 농부' 현상 - 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

박모(57) 씨는 농부다.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한 지 만 10년차로, 일찍이 농민의 신분증인 농지원부와 농업경영체 등록을 마쳤다.

물론 지역단위 농협의 회원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비록 돈 안 되는 농사라고 해도 중단 없이 지어왔으니 농부임은 틀림없다.

관행농업을 멀리하고 유기농업과 자연재배를 추구하는 박씨는 스스로를 ‘치유농부’라고 자부한다. 명함 상단에 ‘나는 농부다’라는 문구를 넣어 자랑(?)하고 다닐 정도다. 하지만 수십년간 농사를 지어온 지역 프로농부들이나 베테랑 농부들의 눈에 비치는 박씨는 ‘반쪽 농부’일 뿐이다.

어쨌거나 박씨는 법적으론 확실한 농업인이다. 농지법령상 농업인이란 1000㎡(302.5평) 이상의 농지에서 직접 농사를 짓거나 바닥 면적 330㎡(100평) 이상의 시설농업 종사, 농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 등의 여러 조건 중 한 가지만 충족하면 된다.

박씨의 농지 규모는 4798㎡(1450평)이다. 프로농부에겐 감히 견줄 수 없는 작은 규모이지만 농업인의 커트라인(1000㎡)보다는 약 5배나 넓다. 우리나라 농가(2018년 기준 102만1000가구) 중 경지 규모 0.5ha(5000㎡, 1500평) 미만 농가는 거의 절반에 육박(47%)한다. 박씨의 경우 그나마 그 최상단에 위치한다.

2010년 이후 귀농·귀촌 전성시대가 개막됐지만 귀농인의 경작 규모는 민망한 수준이다. 실제 2018년 귀농 10가구 중 8가구는 평균 작물재배 면적이 0.5ha 미만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해가 갈수록 그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일단 귀촌한 다음 나중에 귀농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경작지 쪼개기와 이를 통해 농업인의 자격 조건만 간신히 갖추는 ‘나도 농부’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더구나 올해부터 도입된 공익직불제는 이런 ‘이상 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공익직불제는 경작면적 0.5ha 미만인 소농에게 일괄적으로 연 120만원을 준다. 박씨의 경우 2019년에 약 41만원의 직불금을 받았으니 3배가량 증가하는 셈이다.

도시민들이 귀촌한 다음 뒤늦게 농업인으로 변신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각종 농업보조금 지원에다 취득·양도세 할인 및 감면, 지역의료보험료 50% 감면 등의 다양한 혜택이 있기 때문.

여기에 소규모 농사만 지어도 120만원의 직불금을 준다고 하니 솔깃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귀농·귀촌 전성시대가 아직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무늬만 농업인인 ‘나도 농부’가 양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런데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런 ‘나도 농부’ 현상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 되레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농민의 숫자를 지탱해주고, 도시 은퇴자 문제 완화와 ‘농림업 취업자 증가’라는 정책홍보로 활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농지 쪼개기와 ‘나도 농부’ 현상은 농업·농촌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농업인 기준에 대한 법적·제도적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만약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나도 농부’ 현상을 수용할 필요성이 있다면, 이들이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와 다원적 기능을 수행하고 ‘나도 농부’에서 ‘나는 농부’로 진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마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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