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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이집트 탐방기⑨] 미완성 오벨리스크 석공의 눈물 [함영훈의 멋·맛·쉼]

[헤럴드경제, 아스완=함영훈 기자] 지상에서 하늘로 곧게 뻗은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신왕국시대 들어, 고왕국 피라미드 같은 권위를 업고자 했던 파라오들에 의해 많이 만들어졌다.

기원전 300년대 무렵부터 마케도니아, 로마, 투르크, 프랑스 등 외부 세력들이 이집트에 번갈아 침공하는데, 이집트의 찬란한 유적에 이미 놀란 이들은 오벨리스크의 의미를 알게되고, 파괴하기 보다는 자기네 고국으로 운반하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이미 침략자들은 기존의 수많은 이집트 신전에도 파라오식 신격화를 기대하며 자신들의 흔적을 많이 남긴 터였다.

25일 이집트 관광청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 콩코드광장, 이탈리아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오벨리스크는 각각 룩소르 신전, 카르낙 신전에 있던 것이었다. 이스탄불 술탄 아흐멧 광장에 있는 것은 크리스트교 공인으로 잘 알려진 로마황제 데오도시우스가 이집트 것을 갖다놓은 것이다.

운반하기에 버거워 근,현대에 스스로 지은 오벨리스크도 많다. 아메리카 대륙들의 오벨리스크들이 대체로 그렇다.

오벨리스크는 위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네모난 돌기둥으로 기둥 면에 상형 문자로 왕의 공적을 새겨놓았다. 지금 이집트에는 룩소르에 있는 카르낙 신전의 핫셉수트 여제가 건립한 오벨리스크가 30m로 가장 크다.

이집트 주요 역사도시에 쓰인 석조물은 석회석 등의 품질이 가장 좋은 중부지방 아스완 것이 많았고, 아스완 도심 동편의 채석장에서 다듬었다. 특히 오벨리스크는 이곳에서 완성해 운반한다.

우뚝 선 오벨리스크은 룩소르신전 것이 있는 파리 콩코드광장, 이스탄불 슐탄아흐멧광장 등에서 보듯 하나만 딱 서있어도 그 위용이 대단하다.

그런데, 누워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에서는 묘한 연민이 느껴진다.

아스완의 미완성 오벨리스크에서는 석공에 대한 짙은 연민이 느껴진다.

이집트 관광청에 따르면, 이 채석장에는 오벨리스크 제작중이었음이 분명한 긴 바위조각 몇 개가 작업 중단 상태 그대로 누워있는데, 핫셉수트(BC 1508~BC 1458) 여제의 명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업중 깨진 것이다.

우뚝 선 완성 오벨리스크는 왕의 위엄을 상징하지만, 마직막 작업을 하다가 균열을 일으킨, 누워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석공의 눈물과 좌절을 품고 있기에 처연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우뚝 섰다면 세계최고 높이(40m), 최고 무게(1200여톤)의 오벨리스크가 됐을 것이기에 3000여년전 석공의 기대와 좌절이 느껴진다.

일부 이집트 고고학 전문가들은 제작 연대 등을 종합해 보았을 때, 오벨리스크 제작이 실패한 직후 재시도해서 조금 작게(30m) 만들어 카르낙 신전에 두었던 한쌍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가 미완성 오벨리스크의 후속품으로 추정한다.

그들의 예측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카르낙에 있던 두 개의 핫셉수트 오벨리스크 중 나중에 제국주의 침량기 로마 라테라노 궁전으로 옮겨진 1개의 오벨리스크, 그 1차 시도 분이 미완성 오벨리스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잘라진채 누워있는 이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북쪽 채석장에 있다. 이집트 최고의 신전인 카르낙에 세워질 것이기에 여제의 관심사 중 하나로서 거대한 바위가 석공의 정에 다듬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도 커서 떼어낸 조각이 펼쳐진 범위 만도 400m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초대형 돌을 오벨리스크로 만드는 첫 단계는 바위 머리쪽에 작은 홈을 내고 단단한 나무 등으로 쐬기를 박아 쪼개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거대한 바위도 나무 쐬기에 갈라지니 오벨리스크 제작 과정은 작은 정, 작은 망치의 작은 울림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매끈한 외양이며, 일부 새겨진 글씨 등 미완성 오벨리스크의 상태로 미뤄, 거의 완성 직전 단계에서 부서진 것으로 보인다.

아스완은 자원, 자연풍광 등 모든 것을 다 갖춘 중부지방 3000년 중심도시이다. 아가사크리스티가 명작을 완성한 이집트 아스완 카타락트 호텔.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오른 거대한 돌덩이, 이름 모른 석공의 땀과 눈물이 흘러내리듯, 은은한 너의 모습...” 이집트 관광청의 설명과 자료를 접하니 문득 1979년 대학가요 ‘석탑’의 가사가 생각난다. 그들이 기울였을 정성과 땀을 떠올리니, 많은 고대-중세 미술작품 중에서 돌 조각품의 진가가 새삼 고귀해 보인다.

○‘新이집트 탐방기 글 싣는 순서’ ▶2월11일자 ①아이다 공주의 누비아가 없었다면… ②스핑크스 틀렸다, 수호신 호루스가 맞다 ③소년왕 투탕카멘 무덤방은 장난감房 ④에드푸의 반전매력, 에스나 물살 제어기술 ⑤나일강물 맛 보면, 나일로 꼭 온다 ▶2월18일자 ⑥제정일치 룩소르, 신전은 王와 神의 토크라운지 ⑦3500년전 모습 왕가의 계곡…멤논 울음 미스터리 ⑧권력 탐한 모정, 너무 나간 아들 ‘핫-투’ 갈등 ▶2월25일자 ⑨석공의 눈물 밴 미완성 오벨리스크 ⑩호텔이 된 왕궁, 시장이 된 옛호텔 ▶3월3일자 ⑪아스완-아부심벨, 곳간에서 문명 난다 ⑫필래와 콤옴보 문명 덧쓰기, 없애기 ▶3월10일자 ⑬찬란한 박물관, 개발중인 도시, 두 풍경 ⑭신비의 사막 탐험, 홍해 레저 반전매력 ⑮미사포야? 히잡이야? 문명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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