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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농업·농촌 일자리 '통계 따로, 현실 따로'

# L씨는 만 7년차 귀농인이다. 50대 중반에 농촌으로 들어와 지금은 국민연금을 받고 있지만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애초 귀농 당시 계획은 국민연금에 더해 어느 정도의 농업 소득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6년 동안 작지 않은 규모의 농사를 지었지만 몸만 고될 뿐 소득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L씨는 요즘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그는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도 아니지만 농촌에선 월 150만원 수준의 일자리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숨 지었다.

# K씨는 만 10년차 귀농인이다. 60대 중반인 그는 지난해부터 월요일 새벽마다 서울 출근길에 나선다. 매일 장거리 출퇴근이 여의치 않아 주 5일은 출가한 딸의 서울 집에서 묵는다. 농촌에서 농사지어 생활에 필요한 소득을 얻기 어렵자 다시 도시로 나간 것이다. 지금 그에겐 귀농 초기 꿈꿨던 여유로운 시골생활은 온 데 간 데 없다. 농사 규모는 확 줄어 아내 혼자서 먹거리 정도만 짓는다. K씨는 “그나마 이 나이에 도시 일자리를 구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자신을 위안했다.

귀농 만 10년차인 필자가 주변에서 자주 접하는 안타까운 사례들이다. L씨 예에서 보듯 농촌에서는 50, 60대가 원하는 ‘쓸 만한’ 일자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농촌과 비교하면 도시는 여전히 일자리도 더 많고 보수도 더 높다. K씨처럼 다시 도시로 나가 일자리를 구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정부는 ‘농업·농촌이 일자리의 보고’라고 한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농림어업 취업자 수는 2017년 6월 이후 2019년 12월까지 31개월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농림어업 부분이 고용 문제 해결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그 배경을 베이비붐 세대가 주도한 귀농·귀촌이 사회경제적 흐름으로 이어지고, 규모화·법인화 등 우리 농업의 구조 변화로 고용 여력이 확대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농식품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일자리 지원 대책은 ‘핵심’으로 포함됐다.

그러나 농업·농촌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통계상 ‘사실’일지언정 ‘진실’은 아니다. 현장에서 들여다보면 차마 일자리라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도시은퇴자들이 갑자기 크게 늘어나는 지역의료보험료 등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택하는 ‘무늬만 일자리’가 수두룩하다. 대개는 정부가 예산을 대거 풀어 만들어낸 것이다. 보수로 말하자면 알바 또는 반쪽 알바 수준이다. 그런데도 어느 정도의 자산을 가진 도시 은퇴자들은 연간 수백만원가량의 지역의료보험료 부담을 덜 수 있기에 너도나도 취업자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또한 이런 전후 상황을 모를 리 없다. 해마다 공직 은퇴자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농업·농촌을 택하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농촌에 이미 들어와 있는 K·L씨 같은 이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찾아보기도, 얻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부가 성과로 포장하는 농업·농촌의 일자리 증가는 뒤집어보면 지난 10년간 귀농·귀촌의 흐름이 낳은 사회경제적 부작용의 결과물일 수 있다. 더는 통계 따로, 현실 따로 노는 정책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 농업·농촌을 살릴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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