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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산책] 보이지 않는 칼날

최근 네덜란드 항공사 KLM이 한국행 비행기 화장실에 한국어로만 ‘승무원 전용’이라고 써붙여 이용하지 못하도록 해놓아 커다란 논란을 일으키는 사건이 있었다. KLM 측은 국토부의 지적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해명했지만 아시아인(당시 그 비행기에는 네덜란드인 외에 한국인 승객뿐이었다고 한다)이 코로나19에 감염됐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저지른 행동이라고밖에 해석하기 어려웠다. 인종 차별은 아니라고 강변했으나 객관적으로 판단할 아무런 근거 없이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승무원들의 무지와 편견에서 강행한 해프닝으로 보인다.

실제 유럽에 거주하는 지인의 얘기를 들어봐도 아시아인들을 잠재적 보균자로 보고 멀리하거나 심지어 혐오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벨기에에서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발병했고, 한국인 승무원이 네덜란드어로만 ‘화장실 이용 금지’라고 써붙여놓고 차별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면 그들은 순순히 납득할 수 있을까.

함무라비 법전 같은 보복(?)을 하자는 게 아니다. 실제 KLM의 행태에 많은 국민은 분노했고, 그들의 해명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네덜란드 국민 중 극히 일부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 선량한 네덜란드 사람들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심할 경우 KLM의 비상식적인 조치와 유사한 일을 당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과인가.

차별과 혐오는 그래서 두렵고 비도덕적이며 용인되서는 안 될 행위다. 대놓고 나치식 경례를 하며 사람들을 위협하는 ‘나치주의 옹호론자’들은 피해다닐 수있다. 하지만 웃는 낯으로 동양인 혹은 유색인종을 배척하는 사회 분위기는 보이지 않는 칼로 찌르는 행위와 다름없다. 외국인이나 이민자를 차별하면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는 미국 같은 국가에서도 실제 보이지 않는 차별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나이브스 아웃’이라는 영화에서 부유한 백인 가족은 아버지의 간병인인 히스패닉 이민자를 ‘우리의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며 친근하게 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민자의 출신국가가 어디 인지도 몰라 매번 다른 나라 이름을 들먹이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벌어지자 영주권이 없는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거론하며 압박한다. 영화적인 과장과 설정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때문에 이 영화는 추리물인 동시에 통렬한 사회비판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근 유럽축구에서 점점 도를 더해가는 인종차별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과거에는 은밀했다면 이제는 노골적이다. 동양인이나 유색인종을 향해 비난과 조롱을 일삼는 그들의 태도는 한심하고 저급하지만 좀처럼 척결되지 않고 있다. 포르투갈 리그에서는 흑인선수가 골을 넣은 뒤 자신의 피부를 가리키며 ‘난 유색인종이다’라고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세리머니를 하자, 관중들이 쓰레기통을 던지는 등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런 행위는 축구 자체를 위축시키는 것을 넘어 그 사회, 그 나라까지 병들게 만든다.

피칠갑을 하고 전기톱을 든 살인마보다 기괴하고 음산한 배경음악 속에 언뜻언뜻 누군가의 그림자만 비치는 상황이 더 두려웠던 경험을 떠올리면 비슷할까. 차별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공포를 낳는다. 편견과 무지, 고정관념이 만들어내는 차별이 공공연히 확산되는 사회는 그 구성원 모두에게 불행을 안겨줄 수 있다. 김성진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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