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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이집트 탐방기③] 소년왕 투탕카멘-아낙수나문 부부의 진실 [함영훈의 멋·맛·쉼]
소년 탈피 명문 정복전쟁 내몰렸다는說
‘부인 아낙수나문 불화,권력암투’는 영화
현재 說 믿기 힘든 2500년 침략자 왜곡
그가 죽은 뒤 원로재상,군사참모가 파라오로
도굴안된 그의 방선 제왕의 권위 흔적 없어
선대왕, 투탕카멘의 왕권자립 기반 못만들어

[헤럴드경제, 카이로=함영훈 기자] 지중해 일대 하(下)이집트에서 고왕국의 거점을 마련했던 왕들이 자신들의 안식처로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거대 피라미드를 지었다면, 중왕국 말기와 신왕국 시대의 왕들은 새로운 도읍지, 상-하 이집트 중간지점인 테베(룩소르) 서쪽 ‘왕가의 계곡’에 지하동굴 무덤을 만들었다. 상(上)이집트는 나일강 상류 룩소르~아부심벨에 이르는 지역이다. 물론 피라미드가 무덤이 아니라는 학설은 여전히 있고, 무덤이라는 증거도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룩소르 ‘왕가의 계곡’은 무덤이 확실하다.

태양 가까이 닿으려 지상에 지었더니 사후 부활해 쓸 부장품들을 도굴당하기 일쑤였기에, 무덤같지 않은 야산의 지하를 묘지로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룩소르에는 ‘고대 이집트의 나폴레옹’ 투투모스3세, 투탕카멘, 람세스왕가 등의 능 64기와 금빛 절벽 앞 웅장한 3층의 테라스식 신전인 최초 여제 핫셉수트 장제전, ‘웰다잉(Well-Dying)’의 서쪽 땅 입구에 영화 ‘스타워즈’ 장교처럼 생긴 앉은키 17m짜리 멤논의 거상 등이 있다.

멤논의 거상 바로 앞에서 ‘생명의 땅’이라 부르던 녹지가 끝난다. 그 서쪽으로는 풀이 거의 자라지 않는 흙빛 지대이고 그곳에 왕가의 무덤 계곡이 있다.

이집트의 재발견. 도굴 당하지 않은 소년왕 투탕카멘능의 부장품 방은 동물 형상의 나무조각품, 마차 바퀴 등이 발견될 뿐, 국정을 주도했다는 느낌을 줄 만한, 위엄있는 파라오의 유산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의 요절 원인은 소년티를 벗기 위한 무모한 원정에 의한 상해치사, 권력암투에 의한 독살설이 혼재한다.
옥스포드 대학 연구진이 과학적으로 추론해낸 투탕카멘의 매장당시 모습

동쪽 생명의 땅에는 이집트 최대 신전 카르낙 신전과 테베-람세스의 상징 룩소르신전이 이집트 정신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미로까지 만들어 깊게 지하로 들어간 왕릉들은 무사했을까. 안타깝게도 투탕카멘(파라오 재위 BC 1336-1327년 9년간) 것을 빼고는 모두, 무덤 주인이 사후세계에서 쓰도록 묻어둔 부장품들을 도난당했다.

9살에 왕위에 올라 18세에 요절하는 바람에 그의 능 앞과 위로 두 명 이상의 후대 왕이 묻혀 도굴꾼들이 발견하기 어려웠고, “요절한 어린 왕한테 뭐가 있으려고..”하면서 탐욕의 대상도 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투탕카멘은 18왕조(BC 1550-1295) 14명의 파라오 중 12번째이다. 투탕카멘 앞의 18왕조 파라오는 아흐모세, 아멘호텝1세, 투트모세1세, 투트모세2세, 핫셉수트 여왕, 투트모세3세, 아멘호텝2세, 투트모세4세, 아멘호텝3세, 아멘호텝4세(또는 아케나텐), 스멘카라였다.

룩소르 왕가의 계곡, 투탕카멘 무덤 주변

1922년 감춰져 있던 투탕카멘의 지하 능에는 방 한칸 크기의 금박 나무관 속에서 황금으로 만든 마스크, 황금 장식품, 황금관, 미라 등 진괴한 보물이 그대로 발견됐다. 보물은 카이로 고고학박물관에 있다. 포장은 5겹이나 됐다. 부장품 중 가장 많이 발견된 것은 나무로 만든 동물 조각상과 마차 바퀴, 귀금속 류였다.

그가 위엄있는 군주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은 황금 장식과 황금관 외에는 별로 없다. 섭정하던 사람들이 국정조언자에 만족하지 않고 대권 장악 까지 노렸을지도 모른다는 추론과 함께 소년왕 투탕카멘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설들이 심심찮게 거론된다.

투탕카멘의 부인인 안케세나멘(영화에선 ‘아낙수나문’으로 표현)도 자신의 친족내 불륜, 남편의 혼외 관계(미타니 원정때 부상당한 투탕카멘을 치료해준 여인과의 인연) 등 문제로 왕과 사이좋은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온갖 설이 난무한다.

투탕카멘 후임 왕 2명 중 1명은 왕족이긴 했지만 성골급이 아닌 진골급이었고, 나머지 한명은 왕족도 아니었다.

투탕카멘왕을 보좌하던 두명의 참모, 연로한 중신인 비지르 아이(BC 1325~1321년 재위)와 최고 군사사령관인 호렘헤브(BC 1321~1292)가 차례로 이어갔다. 나중에 호렘헤브 왕의 최측근 사령관이 ‘람세스 1세’로서 제19왕조를 연다.

투탕카멘왕에게 조언해주고 사실상 국정의 의사결정을 도맡던 두 사람이 후대왕이 된 것은 150년전인 핫셉수트 여제와 투트모스 3세 간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룩소르 왕가의 계곡 남쪽 핫셉수트 여제의 장제전

투트모스 3세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어머니인 핫셉수트가 수렴청정 섭정을 한다. 핫셉수트는 섭정을 넘어 직접 왕이 되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고, 결국 파라오임을 선언한다.

투트모스 3세가 소년시절부터 섭정자일 뿐인 어머니 핫셉수트의 ‘오버’ 즉 왕위 찬탈 야욕을 못마땅하게 여겼음은 자신의 친정체제가 구축되자 마자 핫셉수트의 흔적지우기에 몰두했던 점에서 잘 나타난다.

파라오 명부에선 지웠지만 핫셉수트가 실권을 쥐고 있을 때 세운 여러 곳의 오벨리스크와 장제전 등 유적을 파괴하지는 못했다. 오래도록 파라오 대접을 못받던 핫셉수트는 근대 들어서야 여왕급 대우를 받고 있다.

투트모스3세는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 불릴 정도로 정복전쟁에 나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보유했다. 핫셉수트에 대한 분노를 전쟁으로 플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신 2명이 어린 왕 대신 국정을 운영하던 소년왕 투탕카멘과 어머니가 섭정했던 소년왕 투트모스3세의 기질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투트모스는 와신상담, 어릴적 부터 철의 제왕을 준비한데 비해, 투탕카멘은 국정관련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전권위임형 책임총리제’ 비슷하게 한동안 중신,참모들에게 국정을 맡긴 것 같다.

투탕카멘 무덤 최초발굴때의 모습

중신들로선 친정체제가 됐을 때 소년왕이던 성인왕이 어떻게 돌변하는지, 그 본능을 알고 있었기에 미리 손을 썼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증명하기 어려운 추론일 뿐이다. 그의 방에서 나온 유물에서는 그가 상남자 군왕으로서 군림했다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투탕카멘이 15세 이후엔 자국을 자주 침노하는 미타니족을 격퇴하기 위해 출정에 나서고, 백성들 사이에서 창궐하던 질병의 뿌리를 뽑기 위해 애썼다는 얘기는 있다. 어린아이로만 보던 중신,참모들의 무시를 이겨내고, 자립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미타니족을 격퇴하기 위한 잦은 출병과 소년답게 몸을 아끼지 않는 전투참여 등이 드라마,영화등에서 묘사된다. 실제 그 역시 투트모세3세를 닮기 위해 자신을 ‘투트’라고 부를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일찍 죽은데에는, 가뜩이나 다리가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출병을 하고, 부상을 입었으며, 그로인해 건강이 악화되면서 사망했다는 설이 현재로선 가장 유력하다. 동물 조각을 갖고 놀다가 재위 막판인 15~18세쯤, 마차 타고 전쟁터로 나간 흔적이 그의 방에 소박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학자들은 해석한다.

이집트 침략자인 그리스-로마 세력과 이들을 자신의 조상으로 세탁한 서구열강들이 기원전 4세기부터 2000년 이상 이 나라를 지배하며 역사왜곡에 나섰기 때문에, 투탕카멘-아낙수나문 부부의 특성과 관계 역시, 서양인들이 만든 ‘영화’에서 비쳐진 모습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이집트의 찬란한 문명은, 침략자들로서는, 피지배국가가 더 우월하다는 인상을 주고, 지배의 정당성을 위태롭게 하기에, 이집트 신화를 다분이 성(性)적인 것으로 각색하거나, 유적들을 악질적 괴물 스핑스크로 희화화하거나, 왕실을 치정이 얽힌 콩가루집안 만들기 등으로 격하시키려 했을 것이다.

한국인 탐방단이 투탕카멘 유물을 보면서 느낀 점은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성군을 꿈꾸던 소년이었다. 도굴당한 흔적이 없기에 모두 깨끗했고, 일제의 장신구, 금붙이 등 모든 것이 작았다. 전쟁 무기 같은 것도 별로 없었다. 그저, 일찍 죽은 선왕 부부가 어린 후대왕이 자립할 기반을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한 바람에, 노회한 참모들에게 당했다는 심증만 든다.

룩소르 왕가의 계곡 초입 혹은 끝부분, 동쪽 녹지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서쪽지대 입구 멤논의 거상

투탕카멘 무덤을 비롯한 왕가의 계곡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끝부분 멤논의 거상들이 서있다. 이들은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군사들 모습을 닮아서, 그 근엄한 자태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을 웃음짓게 한다.

○‘新이집트 탐방기 글 싣는 순서’ ▶2월11일자 ①아이다 공주의 누비아가 없었다면… ②스핑크스 틀렸다, 수호신 호루스가 맞다 ③소년왕 투탕카멘-아낙수나문 부부의 진실 ④에드푸의 반전매력, 에스나 물살 제어기술 ⑤나일강물 맛 보면, 나일로 꼭 온다 ▶2월18일자 ⑥제정일치 룩소르, 신전은 王와 神의 토크라운지 ⑦3500년전 모습 왕가의 계곡…멤논 울음 미스터리 ⑧권력 탐한 모정, 너무 나간 아들 ‘핫-투’ 갈등 ▶2월25일자 ⑨석공의 눈물 밴 미완성 오벨리스크 ⑩호텔이 된 왕궁, 시장이 된 옛호텔 ▶3월3일자 ⑪아스완-아부심벨, 곳간에서 문명 난다 ⑫필래와 콤옴보 문명 덧쓰기, 없애기 ▶3월10일자 ⑬찬란한 박물관, 개발중인 도시, 두 풍경 ⑭신비의 사막 탐험, 홍해 레저 반전매력 ⑮미사포야? 히잡이야? 문명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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