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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무오년 역병’의 참상은 지금으로 보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당시 한반도 인구는 1678만명. 전체 인구 네 명 중 한 명꼴인 742만명이 감기에 걸렸고, 14만명이 사망했다. 인구 1% 가까이가 목숨을 잃은 ‘무오년 독감’의 피해는 조선총독부 통계 이상이었을 것이다. 통계가 정확지 않았을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조선반도에 창궐한 독감의 위력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충남 서산은 8만명이 독감에 걸렸는데, 당시 서산 인구 대부분이었을 것을 보인다. 워낙 많은 사람이 역병으로 죽다 보니, 사망자를 처리할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사람이 없어 추수를 못한 논들이 버려졌다. 어느 우체국에는 ‘국원이 전멸’되는 사례까지 있었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마땅치 않았다. 다른 사람 곁에 가지 말고, 옷을 볕에 쏘여 소독하라고 권유하는 정도였다. 역병에 걸리지 않기만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무오년 독감은 ‘서반아 독감’이었다. 통계가 정확지 않지만 2500만명에서 많게는 1억명이나 되는 사망자가 생긴 스페인독감이 한반도에 몰아친 것이다. 세계 인구의 2~6%가 사망한 팬데믹(pandemic)에 조선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100년이 지난 2020년 2월 6일 저녁 서울은 팬데믹의 한복판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속장소를 가기위해 오른 버스에 승객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했고, 적막감이 흘렀다. 맛집이 밀집해 젊은이들로 붐볐던 거리는 한산했고, 예약이 무색할 만큼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GS홈쇼핑의 직장폐쇄 등을 소재로 화제의 중심은 신종코로나였다. 가짜 뉴스에 속지 말고, 그래도 별일 없이 잘 지나갈 것이란 덕담 아닌 덕담을 끝으로 서둘러 저녁자리를 마무리했다.

무오년 한반도에 비교할 순 없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가 확산일로다. 하루가 다르게 감염자, 사망자 수는 늘고 일반인들의 공포는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식하고 있다.

괴질과 좀비 출현은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소재다. 작년 화제를 모았던 ‘킹덤’이 인기를 끈 이유이기도 하다. 팬데믹공포는 통제불가능의 함수다.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인간의 상상력은 불안과 공포를 더욱 증폭시킨다. 괴질과 좀비를 함께 세운 드라마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팬데믹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는 상상력이 아니라 이성이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보면 신종코로나의 위험은 사스나 메르스보다는 덜하다는 얘기가 맞다. 10%와 30%를 넘었던 사스나 메르스의 치사율과 비교해도 신종코로나로 죽는 경우는 훨씬 낮다. 확진자가 늘고 있지만, 완치자도 나왔다. 신종코로나 사망자는 600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올겨울 미국에서 유행하는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이 8000여명이다. 신종코로나가 아니라 미국독감이 더 큰 문제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독감에 대해 대부분 나라가 방역체계나 치료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예기치 못한 신종코로나를 직접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무오년처럼 속수무책인 상황이 아니고, 예방법을 알고 있고 대응책도 갖고 있다. 괴질이 아닌 바이러스다. 좀비는 인간의 불안을 숙주로 탄생한 상상 속의 산물이다. 괴질과 괴질 속에 탄생하는 좀비는 현실에서는 없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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