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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포비아’의 숙주…그리고 사재기와 괴담

#새벽 5시. 첫 번째 도착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글이 올라온다. 오픈을 한 시간 앞둔 7시. 주차장에서부터 이어진 긴 행렬 속 인증 사진도 속속 올라온다. 8시 오픈 10여분 만에 물건이 동났다는 글이 도배를 이룬다. 구매에 성공했다는 글에는 ‘부럽다’ ‘축하한다’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2020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스크를 둘러싼 쟁탈전 얘기다.

#지하철 역에 쓰러진 한 남성의 사진 한 장에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다. 놀란 사람들은 ‘강남 탈출’을 부추긴다. ‘병원이 폐쇄됐다’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사실인 양 한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상을 휘젓는다. 2020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괴담 얘기다.

‘사재기’는 우리와는 동떨어진 먼 나라 일이거니 생각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마스크가 사재기 대상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217일간 환자 186명, 사망자 38명, 격리자 1만6693명’(2015 메르스 백서)이라는 통한((痛恨)의 숫자를 남겼던 5년 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에도 없었던 일이다.

괴담은 또 어떤가.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이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전후 맥락을 자르고 거짓 부연을 첨가하거나, 몰래카메라라는 형식을 빌거나, 아니면 ‘카더라’식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는 괴담으로 번진다. 신랑 신부, 하객 모두 마스크를 쓴 결혼식 사진(메르스 당시 떠돌았던 가짜뉴스)은 2020년 떠도는 괴담에 비하면 애교로 봐줄 정도다.

사재기와 괴담의 농도는 사람들의 공포와 비례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의 빠른 확산에 비례해 공포지수도 치솟는다. 2차 감염자에 이어 중국 다음으로는 처음으로 3차 감염자까지 확인된 상태에서 공포감은 블랙홀마냥 모든 일상을 빨아들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도 감염될 수 있고, 또 다른 이들에게 감염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이 공생한다. 피해론과 윤리적인 책임론이 어정쩡하게 공존하는 상황은 공포와 두려움이 무한증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공포의 숙주는 신종 코로나지만, 신종 코로나는 공포가 자가증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을 뿐이다. 진짜 공포의 숙주는 ‘불신’이다. 5년 전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안전을 1순위로 두는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불신(감염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1차 우한 교민이 김포공항에 내리던 그 시각 정세균 국무총리는 권력기관 개편 보고를 하고 대국민 브리핑을 한 사실에 많은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과 총선만 쳐다보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공포 조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엇박자 정보(외교부의 혼선, 서울시의 검역당국 비판, 보건복지부 장관의 딴목소리 등등)와 불투명하고 뒤늦은 정보(무증상자의 감염 가능성 뒷북 인정 등등), 검역 당국의 어이없는 실수 등이 맞물리면서 공포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2015 메르스 백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몇번이고 반복되고 있다. “①관계 당국이 한목소리가 되어 ②국민이 원하는 정보를 ③신속·투명하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서의 부제는 ‘메르스로부터 교훈을 얻다’다. 사재기가 기승을 부리고 괴담이 판치는 상황을 보면 5년 전 교훈은 그저 흔적을 남기기 위한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절망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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