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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칼럼 -이윤미 문화부 선임기자] ‘나는 스타벅스로 출근한다’

오전 9시30분, 남자가 들어왔다. 작은 백팩을 멘 모습이 그때와 같다. 두툼한 패딩으로 겉옷이 바뀐 게 다를 뿐이다. 남자는 빈자리 하나를 골라 앉는다. 뒤에 여자가 따라온다. 여자는 작은 가방을 손에 쥐고 있다. 여자는 남자 옆 테이블에 앉는다. 남자는 백팩에서 아이패드를, 그리고 견고한 거치대까지 꺼낸 뒤, 장착한다. 여자가 가방에서 꺼낸 건 그냥 책이다. 오래 시간을 두고 읽어서인지, 혹은 공공도서관에서 빌린 것인지 좀 낡아 보인다. 둘은 말이 없다. 마치 의식을 치르듯, 혹은 습관처럼 묵묵히 그렇게 한다.

둘은 70대 초반으로 보인다. 이 시간에 몇 차례 마주친 걸 볼 때 이들은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는 게 틀림없다. 이곳은 동네 스타벅스다.

이번엔 남자가 기둥을 끼고 옆자리에 앉아 무얼 하는지 흘깃 볼 수 있었다. 남자는 띄워놓은 텍스트를 집중해 읽고, e메모지에 정리까지 하는 모습이다. 도표 같은 것도 보인다. 읽는 게 소설이나 에세이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해 여름, 둘을 처음 봤다. 이용자의 나이치곤 좀 많아 보이는 둘이 자리에 앉을 때만 해도 그냥 세련된 분들이란 생각 정도였다. 눈이 번쩍 뜨인 건 남자가 꺼내든 태블릿pc의 애플 로고 때문이었다. 둘은 내내 아무 말 없이 각자의 콘텐츠에 집중했다. 그렇게 2시간30분 정도 독서를 한 뒤, 가방에 각자의 물건을 챙기고 나갔다.

아파트 단지의 스타벅스의 하루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그야말로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오전 9시30분부터 젊은 엄마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아이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낸 엄마들, 혹은 소아과 병원 대기순번을 기다리는 엄마들로 빈 자리 없이 순식간에 들어 찬다. 어린이집이 끝날 무렵이면 아이와 엄마들로 또 한바탕 북적인다. 그런 와중에도 젊은이들은 열공중이다. 간단히 혼밥을 하거나 간식을 즐기는 곳으로도 기능한다.

이 스타벅스는 다른 브랜드 카페가 있던 곳인데 바뀌고 나서 이용자가 배는 늘었다. 다닥다닥 붙여놓은 테이블이 불편할 듯해도 늘 만원이다. 왜일까? 무엇보다 적당히 이완감을 주는 분위기를 꼽을 만한데. 이는 공간의 크기와 구성, 실내 디자인, 커피향, 음악 그리고 사람 등 복합적이고 미묘하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라도 그 분위기는 일정하게 감지된다. 그만큼 낯선 곳에서 스타벅스를 만나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브랜드를 공유한다는 일종의 팬심도 있는 듯하다. 시즌을 앞서가는 마케팅과 굿즈는 영리해 보인다. 스타벅스 굿즈는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열심히 포인트를 쌓아야 가능하다. 젊은 층은 이런 걸 재미있어한다.

최근 집이 아닌 곳, ‘공간’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뜨겁다. ‘공간 쇼핑’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 좋은 카페는 물론 아늑함을 제공하는 공유오피스, 스터디카페 등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공간 노마드족’이다. 이는 1인가구, 1인 기업, 자유직들이 많이 늘어난 데 기인한다.

혹자는 1인가구의 경우, 대체로 좁은 집에 살다보니 답답함을 해소해줄 넓은 공간감과 타인의 존재를 느끼기 위해 카페 등을 찾는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혼자이지만 혼자 같지 않은 느낌을 원하는 것이다. 현대인에겐 집과 일터 외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어느 학자의 말도 설득력이 있다. 여기에 우리 시대의 결핍, 마케팅의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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