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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조현용 경희대 교수] 올해의 유행어, 내년의 유행어

지난 몇 년간 ‘올해의 유행어’라는 제목의 글을 써 왔습니다. 정확한 자료를 조사한 것은 아닙니다. 신문이나 방송 등의 언론을 보기도 하고 제자나 집 식구,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확인하는 그야말로 주관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주관적인 방법은 학문적으로 보자면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유행어는 사회를 반영합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점점 밝은 유행어는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어두워졌다는 의미겠죠. 특히 유행어를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주체가 주로 젊은이다보니 젊은이의 우울함이 그대로 유행어에 담깁니다. ‘문과의 우울함(문송)’, ‘취업의 암울함(인구론)’ 등이 유행어로 나타나고, 작은 일에 만족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소확행·욜로)도 유행어가 됩니다.

물론 여전히 ‘갑질’ 같은 말도 유행어로 남아있습니다. 아예 새로운 단어로 굳어지는 게 아닐까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왕따’라는 단어처럼 말입니다. 나쁜 말이 유행이 되고, 새로운 단어로 굳어지는 일은 슬픈 일입니다.

2019년엔 어떤 말이 유행어가 되었을까 찾아보다가 올해는 유행어에 관한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유행어가 현실을 반영한다면 올해의 유행어는 알아보나마나 우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의 대립과 대결은 끝을 모르고 뻗치고 있습니다. 좌우, 남녀, 노소, 진보와 보수, 종교 등은 모두 전쟁 수준입니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요. 서로를 용서하지 않는 언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지지하지 않는 이념, 단체, 정당, 종교는 모두 적입니다. 이런 유행어라면 저는 조사하고 싶지 않습니다.

국가 간의 갈등과 대결도 최고조를 달리고 있습니다. 갈등과 보복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팔지 않고, 사지 않고, 가지 않고, 오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동족이나 동맹도 상관없이 서로를 위협하는 험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거친 말 경쟁입니다. 서로를 깎아내리고, 긁어낸 말이 한 가득입니다. 더 험한 말이 힘인 줄 착각하는 세상입니다. 험한 말은 자신의 수준을 보여주는 말일 뿐입니다.

말로 사람을 죽이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만나본 적도 없는 이의 사생활에 지나친 관심을 갖고 온갖 말을 쏟아냅니다. 모두 보는 공간이지만, 나는 숨어있기에 남에게 주는 상처가 흥분이 됩니다. 이런 부작용을 알고 있다면 아무리 긍정적인 면이 있더라도 고쳐야 합니다. 상처를 주는 글이 자유여서는 안 되기에 이런 말이 담길 공간을 줄여야 할 겁니다.

저에게 올해의 유행어는 없습니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말도 잊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내년의 유행어를 꿈꿉니다. 밝고, 듣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말이 유행어라면 좋겠습니다. 외롭고 상처 입은 영혼을 달래주는 즐거운 말, 위로의 말이면 좋겠습니다.

유행어를 주로 생산해 냈던 코미디언이나 예능인의 노력을 기대합니다. 세상을 밝게 하는 좋은 유행어를 만들어낸다면 훌륭한 일을 한 겁니다. 예능인이 사회에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년에는, 아니 앞으로는 우리의 유행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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