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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글로벌 전기차 군단의 안방 공습…경쟁은 지금부터

‘가격은 저렴하지만 만듦새가 조악하고 성능도 떨어지는 자동차’.

기자가 지난 2017년 처음 자동차업계에 출입할 때만 하더라도 중국차에 대한 인식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내연기관차 시장을 뚫기에 중국의 기술력은 수준과 축적된 역사 모두에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비교해 턱없는 수준이었다. 저렴한 가격을 제외하면 별다른 강점을 찾기 어렵단 혹평을 피하기 힘들었다. 중국 업체들이 국내 자동차 시장 진출을 호시탐탐 엿봤지만, 번번이 안착에 실패한 이유도 이때문이었다.

2017년 신원CK모터스가 국내 시장에 첫 중국산 승용차로 선보인 북기은상 ‘켄보600’이 대표적 사례다. 켄보600은 소형SUV를 2000만원 초반대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실제 초도물량 120대가 2주만에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해 한 해 동안 당초 목표 판매 대수였던 3000대에 훨씬 못 미치는 321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출력 부족과 미션 결함 등 품질 불안을 겪으며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으로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교해 기술 진입장벽이 낮은 데다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로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온 덕에 현재 중국의 전기차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단 평가가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EV세일즈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전기차 판매 10위권에 중국 업체만 5곳이 이름을 올렸다. 특히 2위 비야디(BYD·22만9338대)는 1위 테슬라(24만5240대)와의 격차가 불과 1만5000여대에 불과했다. 최근에는 시가총액에서 테슬라를 앞섰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전 세계 전기버스의 99%가 중국산이라고 보도했고, 실제 한국 시장에서 지난해 판매된 전기버스 140대 중 44%인 62대도 중국차였다. 더는 중국산 자동차를 ‘가격은 싸지만 구매는 꺼려지는 불안한 차’라고 치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중국차 업체들은 이제 가격 경쟁력과 무시할 수 없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 진출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 베이징자동차가 내년에 3종의 전기차를 앞세워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선언한 데 이어 바이튼도 ‘안방’인 한국지엠(GM)의 옛 군산공장 부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한다. 중국 자동차 시장 포화 및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축소로 보조금 혜택이 큰 한국을 대체 시장으로 선택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설상가상으로 메르세데스-벤츠와 재규어, 테슬라 등 수입차 브랜드들이 최근 고급 전기차를 잇달아 출시하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안방 공습을 방어해야 하는 국내 업체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물론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두 손 놓고 지켜보고 있는 것 만은 아니다.

현재 부산공장에서 SM3 Z.E.와 트위지 등 전기차 2종을 생산 중인 르노삼성은 내년 1분기께 르노 본사로부터 전기차 모델 3세대 조에(ZOE)를 수입해 판매한다. 볼트 한 종의 전기차만 판매 중인 한국지엠도 최근 노조 차원에서 전기차 생산 배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완성차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전기차 모델이 없는 쌍용차도 오는 2021년 준중형SUV 코란도에 기반한 전기차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며, 현대·기아차도 전 모델에 단계적 전동화 모델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다만 그 시점이 아쉽다. 당장 르노삼성을 제외하면 나머지 4사의 전기차는 후년을 기약해야 한다. 코나 EV가 1만대 이상의 실적 올리며 전기차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아이오닉EV, 니로EV, 쏘울EV 등의 판매 실적이 저조한만큼 코나의 뒤를 이을 새로운 전기차의 존재가 아쉬운 상황이다. 모델 노후화 등으로 가격과 성능을 앞세운 중국 전기차에게 안방을 내줘야 할 수도 있다.

전기차 전문 브랜드의 부재도 아쉽다. 업계에선 국내 완성차 업체에도 벤츠나 볼보처럼 전기차 브랜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전기차 전문브랜드가 시장에 주는 인식이 상당히 긍정적이란 이유에서다.

들어온 줄도 모르던 중국산 전기 버스가 국내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는 것처럼,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어느새 국내 전기차 시장 마저 점령당할지 모른다. 국내 업체들의 발빠른 대응을 기대해 본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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