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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세한 필력’ 애치먼의 산문집
알리바이 안드레 애치먼 지음, 오현아 옮김 마음산책

여름 하면 생각나는 작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가 안드레 애치먼 뉴욕시립대 교수의 국내 처음 소개되는 산문집은 그 이름만으로 설렌다. 제목 ‘알리바이’는 라틴어로 ‘다른 곳에’라는 말. 그가 데려갈 낯설고 은밀한 세계의 문 앞에서 호흡은 일단 멈춤! 애치먼 특유의 섬세하면서 깊은 터치가 아련한 감각을 일깨운다.

‘삶은 어딘가에서 라벤더 향으로 시작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산문 ‘라벤더’는 사춘기 소년이 아버지의 향수, 어머니가 손수건에 묻혀 준 그 향에 아찔하게 취하던 때를 시작으로 향수에 집착하면서 점차 자신이 좋아하는 향을 탐색해가는 이야기다. 또한 그 수많은 향이 품고 있는 사랑, 외로움, 그리움, 현실 옆, 혹은 뒤, 그 너머의 상상의 세계, 가면의 세계, 원초적 세계의 이야기다.

또 다른 글 ‘친밀감’에선 로마로 망명하고 문학에 빠져 살던 날들을 돌아보며, 작가는 이 시절을 통해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책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프루스트에 대한 깊은 애정과 영향을 보여주는 ‘지연하기’, 글쓰기와 기억에 관한 그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는 ‘델타카’도 흥미롭다. 작가는 1990년 한 잡지에 발표한 글에서 이집트에서 추방되기 전, 동생과 함께 알렉산드리아의 밤거리를 걸었다는 글을 썼다가 이 글이 담긴 책에선 동생의 부재를 털어놓아 화제가 됐는데, 다시 밤거리를 걸었던 적조차 없었다고 밝힌 것. 그러나 작가는 사실이 아니었어도 진심으로 갈망했고 상상했던 것도 기억에 포함되는 것이 아닐지 진실과 허구,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세상을 그 자체로 보지도 읽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며, 세상의 흔적을 그 자체로 알지도 못한다.(…)손을 내민 우리의 몸에 결국 와닿는 것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투영한 찬란한 빛이다. 편지가 아닌 봉투이고, 선물이 아닌 포장지이다.”(‘친밀감’에서)

문학과 예술, 시대와 거리를 가로지르며 기억의 강에 침잠한 것, 유예된 것들을 생생하게 소환해내는 작가의 글쓰기 매력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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