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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고령화 사회…이젠 웰빙이 아니라 웰리타이어링”
“은퇴 후 生은 여생 아닌 본생…70세 미디잡·75세 미니잡 만들어야”…노년 위한 인생설계 ‘웰리타이어링…’ 펴낸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

대한민국은 곧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다. 생산 가능 인구는 줄고, 성장잠재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 안그래도 심각한 노인 빈곤이 사회문제로 고착화될 수 있다. 이에 한 정치인이 새로운 대한민국 사회설계 해법을 제시했다. 신간 ‘웰빙이 아니라 이제는 웰리타이어링이다’를 펴낸 민병두〈사진〉국회 정무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장실에서 만난 그는 거침없는 화법으로 자신의 사회설계 제안을 소개했다. 노년 이후의 행복한 삶을 위해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은퇴, 고령자 일자리 마련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들이었다. 그의 책에 담긴 제안은 물론 그의 삶, 정치 이야기를 두루 들어봤다.

▶은퇴 이후는 여생(餘生)이 아니라 본생(本生)=민 위원장은 그동안 책을 꽤 낸 정치인이다. 문화일보 워싱턴특파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한국계 미국인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고교졸업자들의 교육일기(완벽한 학생들)를 썼고, 지난해엔 서울 혁신 프로젝트를 담은 ‘도시는 사람이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민 의원은 “초고령화 사회가 매우 위험한 핵폭탄처럼 다가오는데 사람들이 별로 준비를 안하고 있는 것 같아 이 책을 썼어요”라고 말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절엔 ‘웰빙(well-being)’이 화두고, 2만 달러 때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면, 이제는 은퇴 이후 행복한 노년을 위한 인생설계인 ‘웰리타이어링(well-retiring)’이 시대적 화두가 됐다는 설명이다. 의정활동 중간 중간 문제의식을 쌓아가며 틈틈이 자료를 수집해 집필했다.

그는 “준비되지 않은 노년의 삶은 굉장히 불행하다”고 경고했다. 단순히 직장을 그만둔다라는 걸 떠나서 인생 전체를 어떻게 마감해가느냐, 사회적 관계는 어떻게 마감 하느냐를 반드시 미리 생각해야한다는 설명이다.

민 위원장은 이제 ‘여생’이 아니라 ‘본생’이란 말이 다가올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은퇴 이후를 ‘남은 삶’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민 위원장은 “예전에는 여생이 말 그대로 잔여 인생이었다. 은퇴하면 금방 죽으니까. 보통 은퇴하고 10년 내 죽는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80세, 90세까지 산다. 지금 세대는 60이 넘으면 여생이 아니라 본생을 산다고 생각하고 인생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회설계도 노년 역시 본생이라는 측면에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웰리타이어링이 단지 노년 세대만을 위한 사회설계 솔루션은 아니다. 노인들의 안정적 노후가 자리잡는 만큼 젊은 세대가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저출산 고령화가 더 심각해지면 단순히 역삼각형 정도가 아니라 젓가락 두 개를 놓고 집을 떠받치는 형국이 될 것이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부모가 아니라 조부모 세대의 건강보험·국민연금 등 사회적 경제적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70세 미디잡·75세 미니잡 만들어야=민 위원장은 법적 은퇴 시기를 65세로 연장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임금피크제나 유연근무제 등의 제도를 대폭 확대해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시장형 일자리가 65세에서 끝난 뒤 다른 종류의 일자리도 필수다. 65~70세까지는 ‘미디잡(midi job)’, 71~75세까지는 ‘미니잡(mini job)’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본은 15인 이상 기업의 98%가 실질적으로 정년을 보장한다. 우리도 65세까지는 시장형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게 하고 70세까지는 시장과 관(官)에서 반반씩 공급하는 미디잡, 71~75세는 교통정리같은 관(官) 공급형 미니잡을 만들어 실질적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루에 4~5시간 일해 한 달 40~50만원 가량은 벌 수 있는 중간 형태의 일자리를 우리 사회가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평균 수령액이 40만원 가량인데 거기에 은퇴한 부부가 둘이 벌어 총 80~100만원 정도를 벌 수 있게 해주면 어느정도 먹고 살 만한 노후 소득이 나온다는 생각에서다.

일을 하려면 노년 건강에 대한 사회설계도 필수다. 민 위원장은 “가장 중요한 게 건강과 근력이다. 지난 10년 사이 노인의료비는 2배로 증가했다. 앞으로는 더 빨리 늘어날 것”이라며 “아픈 노인보다 아프지 않은 노인을 만들도록 사회 전체가 걷는 길, 운동하는 코스, 보건의료산업 등을 발 맞춰서 발전시키지 않으면 사회가 이 비용을 다 감당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웰리타이어링의 마지막 키워드는 ‘사회적 관계’를 통한 행복이다. 그는 “사람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런 측면에서 관계의 단절은 곧 소속감이나 기여감의 상실이기 때문에 굉장히 큰 문제”라고 했다. 이어 “시위 현장에 노년 세대가 고등학교 깃발 들고 나가는 것은 소속감과 기여감, 존재의식을 통해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그것을 다른 곳으로 돌려줘야한다. 노년 세대가 그렇게까지 성 내가면서 살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건 그래도 정치 =정치인이 원래 그의 꿈은 아니었다. 글을 쓰는 학자나 기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기자가 됐다. 2004년 문화일보 기자시절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도 크게 망설였다. 그는 “사실 정치를 할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 없었는데 ‘과거에 민주화운동했던 사람이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야하는 거 아니냐’는 설득에 흔들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누구나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몸 담았던 언론도 매일같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고, 정부 공무원들은 제도를 설계해 세상을 바꾼다. 검사는 사법권을 통해, 판사는 명판결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을 가장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정치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단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욕먹어가면서 ‘왜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힘들고 지치고 어려워도 정치판에 뛰어든 이상, 세상을 바꾼다는 근본적 미덕을 믿고 거기에 헌신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하던 시기는 이른바 ‘3김(金) 정치’가 막을 내리는 시대였지만 당시만해도 정치인들의 배포가 상당히 컸다고 회상했다. “당시 제가 특종했던 기사들이 DJ정부 국정원 정치개입 문건 등이었어요. 동교동계 사람들이 ‘민주화운동 하던 사람이 서류나 훔쳐갈 줄은 몰랐다’고 섭섭해하면서도 ‘그래도 기자는 불의를 보면 쓰는 게 맞지’라고 말해주더군요. 지금과 비교해보면 옛날 정치인들은 참 통이 컸어요.”

▶“한국정치는 3류도 아닌 5류”=3선 의원으로 중진에 속하는 여당 정치인이 됐지만 국회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여전했다. 한국정치가 3류라는 비판에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3류가 아니라 5류”라는 대답이 곧바로 튀어나왔다. 일 안하는 국회에 대한 환멸 때문이다. “사실 국회의원이 1년에 며칠이나 일 합니까. 민원 듣고 지역구 챙기는 건 다음에 또 당선되려고 하는거지 국회의원 본연의 의무가 아니죠. 상임위에서 1인당 평균 21분 문답해 열흘하면 210분, 2년에 한번 돌아오는 대정부질문 평균 12분, 예결위 들어가면 질의 40~50분. 그마저도 대부분 보좌관들이 써주는거죠. 1년에 자기가 질의하고 노동하는 시간이 몇시간 되지 않아요. 웨이팅(waiting), 샤우팅(shouting), 피켓팅(picketing)밖에 할 줄 모르는 국회의원들이 수두룩 합니다. 국민의 감시 아래 매일같이 토론하고 매일같이 입법하도록 국회법을 완전히 뜯어 바꿔야해요.”

국회 개혁론자이지만 여전히 그는 정치의 미덕을 생각한다. 최근 일부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에 대한 의견을 묻자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를 바꿀 생각을 해야지 진흙탕이라고 정치판을 떠나면 안되고 그 진흙탕을 넘어서는 얘기를 해야죠. 내가 불출마 한다고 해서 과연 한국정치가 달라지나요? 저는 오히려 정치판 안에서 내 역할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배두헌 기자/badhoney@

사진=정희조 기자/ch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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