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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82년생 김지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화이트 리본 캠페인 설립자 코프먼
“우선,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열어야”
젠더 평등은 남성의 삶에도 긍정적
남성이 육아·가사 절반 맡는 게 해법
남성은 여성에 대한 전쟁을멈출 수 있다마이클 코프먼 지음/이다희 옮김바다출판사

‘82년생 김지영’과 그를 둘러싼 논란은 젠더· 여성문제에 관한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영화 속 김지영의 남편은 최악의 남자는 아니다. 지영을 이해하고 도와주려 하지만 한계는 뚜렷하다. 지영이 일을 하고 싶어하자 1년 육아휴직을 놓고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안팎의 여러 장애와 지영이 직장생활을 하기에는 몸이 성치 않다는 이유로 계획을 접는다. 지영 역시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하는 육아 현실과 밖에서 자신이 버는 돈 보다 남편이 벌어오는 게 더 많다는 경제적 이유를 따져보게 된다.

페미니즘 논쟁 속에서 일부 남성들은 시대가 바뀌었다며,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화이트 리본 캠페인의 공동설립자인 마이클 코프먼은 단호하게 “나와 같은 성별을 가진 인간에게 수천 년 넘게 주어졌던 우대 정책은 결코 지속되어서는 안된다”며, “남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다시 형성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화이트 리본 캠페인은 여성 폭력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이를 근절하는 것을 목표로 남성이 시작한 국제적인 여권보호 운동이다.

40여년 동안 교육자, 활동가로 젠더 평등이 남성의 삶에 어떤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는지 연구하는데 힘을 쏟아온 코프먼은 저서 ‘남성은 여성에 대한 전쟁을 멈출 수 있다’에서 무엇보다 먼저 여성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특권’을 누려온 이들에게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여전히 여성의 권리 신장에 반대하거나 이제 포스트페미니즘 유토피아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불편한 여성현실의 리스트를 제시한다.

“만약 남성이 여성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면(…)여성과 남성 사이의 끈질긴 소득 격차, 일부 직종에서의 여성 쏠림 현상, 여전히 대기업 여성의 승진을 가로 막고 있는 장벽, (…) 여성에게 눈곱 만큼 주어진 공직과 법관직, 수많은 여성이 경험하는 성적, 신체적, 정서적 폭력, 여성이 가사와 육아에 할애하는 평균 시간과 남성이 할애하는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간극, 여러 종교 내의 여성이 경험하는 2급 교인 대우, 정치적, 조욕적 영향력을 이용해 피임과 임신 중지에 대한 접근을 막음으로써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는 남자들, 다수의 국가들에 여전히 존재하는 아득한 여성 교육 장벽” 등이다. 이는 그저 짧은 버전일 뿐이다.

코프먼은 생활 속에서 겪은 일이나 들은 사례들을 들려주며 여성의 세계로 초대한다. 가령 어느 맑은 가을날 공원을 산책하며 잔뜩 들떠있던 저자와 달리 여자친구는 공원에서 남자들에게 괴롭힘과 위협을 당하는 상반된 경험을 하게 된다. 남자에겐 기본적인 권리가 여자에게 위험천만한 일인 것이다.

“여성의 말에 귀기울이는 경험은 세상에 없는 책을 읽는 경험, 세상에 없는 정치적 선언, 세상에 없는 설교를 듣는 경험, 세상에 없거나 남자의 순서가 올 때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목격하는 경험이었다.”(‘남성은 여성에 대한 전쟁을 멈출 수 있다’에서)

저자는 젠더 평등 진전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로 직장 내 불평등을 꼽는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내 승진은 유리천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입사원 때 비슷했던 남녀 비율은 중간층인 과장급부터 37%대 63%로 급격하게 벌어진다.

저자는 여성이 직장에서 막닥뜨리는 불평등을 조목조목 열거한다. 우선 능력평가 절하다. 대학 연구실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한 대학원생이 실험실 관리직에 지원한다고 가정하고, 가상의 이력서를 작성했다. 지원서의 절반은 여성의 이름으로, 나머지는 남성의 이름으로 제출했지만 이력서의 다른 내용은 동일하게 작성했다. 고용을 결정한 교수들은 여성 지원자에게 남성 지원자보다 14퍼센트 더 적은 임금을 제시했다. 여성에게는 교수의 지도를 받을 기회도 더 적게 돌아갔다.

사교모임에서의 배제는 좀 더 미묘하다. 여성을 초청하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부적절한 관계로 비쳐질 수 있다는 사실때문에 소외되기도 한다. 직장 내 젠더 문제가 비단 남성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승진에 도움이 되는 출장 등의 활동에서 배제되거나 가정친화적 정책의 부재, 인지하지 못한 사이 일어나는 언어와 접촉 등도 직장 내 젠더 평등을 가로막는 중요한 장벽이다.

의식의 변화는 있다. 70년대만해도 남성의 74퍼센트가 남성이 돈을 벌어오고 여성은 집에서 살림해야 한다고 여겼던 게 2008년엔 이 수치가 40%이하로 떨어졌다는 건 미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코프먼이 제시하는 젠더 평등을 이루는 결정적인 방법은 ‘아빠의 변화(Dad Shift)’라고 부르는, 남성이 양육과 가사 노동의 절반을 맡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데 따른 엄청난 타격이 여성에게 그대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낮은 소득, 경력단절, 특정 직업군의 쏠림 등 사회권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코프먼은 남성의 절반 육아는 여성과 아이는 물론 남성 자신에게도 긍정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육아에 적극 참여한 남성은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공감능력이 커지며 리더십에서도 변화가 생기고 정서적 안정감과 풍부함을 갖게 된다.

코프먼이 다른 남성 둘과 함께 화이트 리본 캠페인을 시작한 건 1989년 몬트리올에서 페미니즘에 분노한 어느 남성이 여대생 14명을 살해한 사건때문이었다. 그는 선한 의도를 가진 소수의 남성이 단지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코프먼은 남성들이 변화를 받아들일 때 절반의 기회가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하고 손해라고 여길 수 있지만 결국 젠더 평등만이 거추장스런 남성성이란 갑옷을 벗고 서로 존중받는 사회로 가는 길임을 강조한다.

책은 남성이 보는 젠더문제, 페미니즘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공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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