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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금강산관광 비판]‘통일의 소’ 몰고 금강산 열었는데…
문닫힐 위기 금강산 관광의 역사…
DJ때 시작 2005년 100만돌파 전성기
박왕자씨 피살-천안함 폭침 겹치며 중단

남북은 지난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 프로그램’ 운영을 놓고 손을 맞잡았다.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 땅인 금강산을 밟게 된 일은 남북협력의 물꼬가 트였음을 의미했다. 통일이 성큼 다가왔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하지만 초기 핑크빛은 퇴색했고, 점차 상황은 악화돼왔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던진 ‘폭탄 발언’으로 결국 존폐를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왔다.

남북이 뜻을 함께 한 것은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때였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 일환으로 먼저 제안하고, 김정일 정권이 이를 대남의존정책 일환으로 받는 식이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남북이 본격적으로 손을 맞잡기 5개월전인 6월 ‘통일 소’ 500마리를 끌고 북한을 찾기도 했다. 이때까지 우리 입장에서 금강산은 50여년간 금단의 땅이었다. 분단된 후 휴전선 이북 북한령이 된 데 따른 것이다.

금강산 관광 길은 2000년대 들어 더욱 넓어졌다. 처음에는 배를 타고 가야 했다. 현대그룹이 북한과 추가 협상을 한 후 2003년부터는 버스, 2008년부터는 자가용을 타고도 갈 수 있게 됐다. 관광객 수는 2005년 6월 기준 100만명을 넘는 등 탄탄대로에 놓인 듯했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이후 갑작스럽게 중단됐다. 당시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인해서다. 박 씨는 북한군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남북은 책임을 놓고 서로 다른 결론을 냈다. 북한은 확실한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을 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빗장은 더욱 굳게 걸리게 됐다. 북한은 이런 가운데 2년도 채 넘지 않은 2010년 3월에 천안함 폭침 도발을 일으켰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개성공단을 뺀 모든 남북 경협 중단’을 골자로 한 5·24 대북 제재를 가동했다. 금강산 관광 중단의 장기화를 알린 것이다.

현대그룹에서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전담하는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에 제동이 걸린 이후에도 한동안 금강산에 있으면서 시설을 손 봤다. 하지만 관광 중단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결국 2011년 8월 완전히 철수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금강산 관광 프로그램’이 재가동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이후 일관되게 금강산관광의 중요성을 강조해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개성·금강산의 조건 없는 재개’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 그 사이에 풀어야 할 과제는 해결된 셈”이라고 화답했다. 이는 남북 간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말로 해석됐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일찌감치 빗장을 풀 준비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결과적으로 빗나간 기대가 된 상황이다.

이런 금강산관광은 김 위원장이 금강산의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북한 노동기관지 노동신문 등이 23일 보도하면서 중대 위기를 맞았다. 김 위원장은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고, 현대적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며 “(금강산에)남녘 동포들이 오면 언제든 환영하겠지만, 우리 명산에 대한 관광사업을 남측을 내세워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공통된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측과의 파트너십을 일단 배제한 것이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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