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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강성유 신영증권 신탁사업부 변호사] 진정한 나의 편, 신탁(信託)

  • 기사입력 2019-10-1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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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L. A. 포이어바흐가 “인간의 본질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인간의 사회성은 본능이다. 인간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회성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하여 느리고 몸집도 작고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다. 물론 인간이 상대적으로 강한 지구력과 멀리 정확하게 던지는 능력이 있지만, 결정적으로 유소년기간이 너무 길어서 장점을 발휘하기까지 오랫동안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인간은 공동육아의 필요성으로 자연스럽게 집단을 이루며 살게 되었고, 공동생활은 본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집단생활의 초기에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면 되었으므로 서로 의지하는 이유도 단순하였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가 다양해졌고, 주관적인 사정을 고려하면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이유를 갖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한 사회구조에서는 서로 누구든 믿고 의지할 수 있었지만, 서로의 필요가 제각각인 구조에서는 나를 위해줄 진정한 나의 편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의 편은 누구일까? 가족? 막역한 친구? 회사? 고향? 국가?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이나, ‘무엇이 진정 나를 위하는 나의 편인가’라는 의미를 생각해보았을 때, 진정한 나의 편이 누구인가 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나의 편은 내가 무엇을 걱정하고 원하는지 알아주고, 변하지 않아야 하며, 실제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은 사회구조 속에서 누가 어떻게 나의 편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이 누구보다 가족을 의지하며 사는 것은 사실이나, 남보다 못한 가족도 많은 경우가 현실이고 무엇보다 가족이 변하지 않고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때가 많다. 친한 친구도 마찬가지다. 회사, 고향, 국가 등은 소속 구성원에게 평균적인 관심을 제공할 뿐, 온전한 나의 편이 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신탁(信託)’이 진정한 나의 편이 될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신탁은 내가 가지고 있는 완전하고 포괄적인 권한을 주어, 가족 및 재산에 관하여 나를 대신할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나, 정신 능력이 쇠퇴했거나 심지어 죽은 이후에도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걱정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걱정과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실행으로 옮긴다. 노력은 나만을 위해서 끊이지 않고 변함이 없다.

재산을 잘 관리하는 것이 신탁의 역할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금융기관이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되며, 금융기관은 가족까지 돌볼 수 있는 노력과 능력을 갖춰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즉, 금융기관이 역할에 충실한다면 신탁을 통하여 진정한 나의 편을 얻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신뢰할 만한 금융기관을 찾아 나를 대신할 신탁을 하나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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