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양영경의 현장에서] “분양가상한제는 폭거”…거리로 쏟아져 나온 조합들

“이건 폭거다…소급입법 중단하라, 분양가상한제 폐기하라”, “기부채납까지 하라는 건 다 했다… 결과가 이건가”

지난 9일 오후 6시께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소급적용 반대’를 외치는 조합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미래도시시민연대와 주거환경연합 주최로 열린 ‘분양가상한제 소급적용 저지 재개발·재건축 조합원 총궐기대회’〈사진〉는 42개 조합의 조합원, 가족 등 1만8000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성토하는 장이 됐다. 주택정책에 반발하는 시위로는 15년 만에 최대 규모다.

이들이 집을 지키려고 정작 거리로 나온 데는 나름의 절박함이 있다. 시위에 참석한 조합은 모두 관리처분인가를 받았다. 단지가 재건축·재개발 됐을 때 조합원 개인이 받게 될 주택 규모와 층수, 부담금이 이미 계산됐다는 말이다. 이를 토대로 이미 이주·철거를 진행한 곳도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10월 시행 예고한 분양가상한제는 이 모든 것을 뒤엎는다. 기존 면제대상인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곳까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키로 했기 때문이다.

이미 이주까지 마친 조합원들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로 낮아진 일반분양가 탓에 갑자기 최소 1~2억원은 더 내야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니 날벼락이 따로 없다. 일부 단지에서는 시뮬레이션 결과 조합원분양가가 일반분양가보다 비싼 경우도 나왔다. 이미 기존 아파트는 철거돼 돌아갈 곳도 없다. “퇴로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장에서 만난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원 이모(70) 씨는 “재산이라곤 집 한 채인데 이주·철거를 한다고 해서 지금은 안양까지 가서 전세로 살고 있다”며 “퇴직해서 아무런 수입이 없는 상태여서 당초 산정된 부담금만 믿고 재건축을 진행했는데, 추가 부담은 말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이런 사정이 본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현장에는 대부분 머리가 희끗희끗한 60~70대가 주를 이뤘다.

조합원의 추가 부담을 통해 누구가 혜택을 보느냐도 논란이다. 시위 곳곳에는 ‘현금부자 로또, 조합원 쪽박’ 등이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낮은 분양가가 적용된 ‘로또분양’의 수익을 당첨된 소수가 점유한다는 비판이다. 잠실진주 재건축 조합원 이모(72) 씨는 “이미 대출길이 막힌 상태에서 무주택 서민들이 강남권 분양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결국은 현금 부자들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정부는 분명 분양가상한제를 통한 ‘주거안정’을 내걸었는데, 자신들의 주거안정은 온데간데 없다는 호소도 이어졌다. 정부가 집값 잡겠다는데 그래도 한 번은 참아야 할까. 그러기엔 현 정부의 정책이 번번이 먹히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장덕환 개포4단지 재건축 조합장은 “(정부가 9·13 대책을 시행한 이후인) 지금도 집값이 오르고 있다”며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에 이어, 분양가상한제까지 하면 재건축을 아예 안 한다. 신축 수요는 있는데 우량주택이 공급 안 될 것이라는 전망에 지금 분양되는 것만 경쟁률이 200대 1이 넘고, 신축 아파트는 폭등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마저 실패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대답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조합원들은 이날 저녁 8시께 효자로를 거쳐 청와대 앞까지 행진했다. 자신들의 구호가 청와대까지 들리는지 몇번이고 경찰 관계자를 통해 확인하는 모습도 이어졌다. 이들이 납득할 수 없는 지점에 대해 이제는 정부도 뚜렷한 대답을 내놓을 때다.

양영경 기자/y2k@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