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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부동산 정치’가 된 분양가 상한제

지난 12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보면 갈수록 의문점만 자아낸다. 10월 시행여부는 물론, 최소 1개에서 최대 31개인 투기과열지구 어디가 지정될 지 예측불허다. 국토교통부는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정성적 평가’를 지역 지정에 적극 반영한다고 한다. 게다가 비공개 회의여서 정치적 의구심마저 든다. 한마디로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 시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정책은 타이밍이 생명이다. 효과 극대화를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엔 때가 좋지 않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 속에 글로벌 제조업 경기가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이 1%대로 주저 앉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경제를 총괄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물론 여당 의원들까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우려했지만 정치인 출신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강행했다.

김현미 장관은 늘 “주택시장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로 경기침체 가속화가 걱정된다. 홍남기 부총리가 “부동산 상황이나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실제로 민영주택에 적용하는 (분양가 상한제) 2단계 조치는 관계부처 간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이유도 이때문이다.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은 지난해 12월부터 계속 마이너스를 보이다가 7월에 겨우 0.07% 상승했다. 2007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할 당시 3년내내 집값이 상승할 때와 확연히 다르다. 부동산 경기변동 사이클상 보더라도 지금은 지난 5년간의 상승세를 마치고, 하락세로 바뀌는 변곡점이다.

국토부의 분양가 상한제의 핵심 목표는 강남 재건축·재개발 분양가를 통제해 집값을 잡겠다는 것이다. 경제사정과 시장상황은 아랑곳없이 강남 집값(분양가)만 보고 있다. 경주마처럼 눈 가리개를 하고 질주하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정책이 거칠다. 대표적인 예가 재산권 침해 논란에도 분양가 상한제 적용 시점을 기존 ‘관리처분계획 인가 신청’에서 ‘입주자 모집공고 승인 신청’으로 바꾼 것이다.

당장 서울에서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정비사업장(76곳·7만2000가구)은 ‘패닉’에 빠졌다. 관련 법에 맞춰 차근차근 진행해오다 날벼락을 맞았다. 해당 재건축 조합들은 위헌소송까지 검토 중이다. 국토부는 “국민 주거 안정이라는 공익이 조합원의 기대이익보다 크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공익’만 앞세울 뿐 급격한 정책변화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법적 안정성은 온데간데 없다. 김현미 장관의 마음속에는 강남의 조합원들은 (표를 줄) 국민이 아닌 것 같다. 이를 보고 후련해(?)하는 지지층의 표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셈법이 엿보인다. 부동산 정치를 통한 편가르기다.

더 큰 문제는 집값안정을 위한 해결책이 ‘공급확대’가 아니라 가격을 억지로 통제하는 ‘반(反) 시장적 규제’라는 점이다. 공급부족을 불러와 3, 4년 뒤 폭등은 자명하다. 당장 분양가 상한제 발표 이후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약세지만 신축 아파트는 오름세다. 낮아진 분양가가 주변 시세를 낮추는 게 아니라 억지로 누른 분양가(로또분양)가 주변 시세에 맞춰지면서 집값 상승을 부추길 것은 불보듯 뻔하다.

강력한 대출규제로 로또 분양의 수혜자는 무주택 서민들이 아니라 현금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역설적으로 투기과열지구에 로또분양을 받기 위한 투기열풍이 불 조짐이다. 전문가들은 강남 고가 재건축 시장을 규제하면서 입주계층이 서민층일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이번 분양가 상한제는 시행 시점이나 당위성, 공정성 등 여러 면에서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년 총선에서 ‘표심’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강행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념에 경제정책을 억지로 맞추다보니 정치로 변질되고 말았다. 부동산 정책이 정치화되는 순간, 집값도 못잡고 표심도 잃는다. 생각보다 빨리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다.

권남근 소비자경제섹션 에디터/happyd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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