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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 ‘X맨’ 소리 좀 들어본 김진표 “싸우더라도 ‘주국야광’ 정치해야”
“원내대표 때 ‘FTA 비준’ 찬성에 ‘X맨’ 비판 받았지만 소신 안 굽혀…
하반기엔 소주성 성과 나올 것”…
김진표 민주당 의원의 정치·경제 철학


경제부총리를 역임하고, 야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김진표 의원. 그는 정치권이 ‘반대를 위한 반대’에 빠질때 민생은 힘들수 밖에 없다고 했다. 정치권 화두를 놓고 치열하게 싸울땐 싸우되, 민생을 위한 국회 본연의 일은 국회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밤에는 광화문에 가 투쟁을 하더라도, 낮에는 국회에서 민생을 챙겨야 한다는 ‘주국야광(晝國夜光)’의 그의 주창이 현 상황에서 시사점을 던져준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우리 당이 야당이던 시절, 당내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비준해줘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이 붙었어요. 전 비준을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었죠. FTA는 사실 노무현 정부 때 체결한 것인데, 근데 우리가 야당이 됐다고 그걸 반대하면 앞으로 우리가 국민에게 인정받는 수권정당이 될 수 있겠느냐고 했죠. 그건 ‘아니올시다’ 아닙니까.”

헤럴드경제와 12일 국회 의원실에서 만난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첫마디는 이랬다. 요즘 ‘반대를 위한 반대’에몰입하는 경향이 있는 정치권에 대한 쓴소리였다. 경제부총리 공직을 거쳐 야당 원내대표까지 역임하며 ‘경제통’으로 불리는 김 의원. 차기 총리감으로도 자주 거론되는 그는 관록의 정치인답게 최근 정치권의 파행 정치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FTA 비준 찬성하자 ‘X맨’으로 불린 사나이=김 의원은 지루한 국회 파행국면의 해법을 묻는 질문에 자신이 원내대표로 일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2011년~2012년 민주당과 통합민주당에서 야당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당시는 이명박(MB) 정부가 들어섰고, FTA와 관련한 ‘광우병 논란’이 일었던 뒤였다. MB 정부에 광우병 파동은 치명적인 위기였다. 집권 초기 시위가 이어지면서 지지율은 폭락했다. 광우병 논란 초창기엔 대대적인 촛불집회가 일어났다. 야당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FTA 반대를 고집할만한 명분이 충분했다. 당연히 야당 내부에서 강경파가 득세했단다. “FTA는 노무현 정부 임기 때 체결된 안건인데, 당시 보수 야당에서 반대를 해 통과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우리가 야당이 되니 또 (반대)강경론이 득세했습니다.”

이른바 ‘야성(野性)’이 절정에 달했단다. 김 의원은 이 ‘야성’을 ‘이성(性)’으로 설득하는 일이 원내대표 시절 가장 어려웠던 일로 회고한다.

“그래도 난 비준 반대는 ‘자살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찬성을 밀어부쳤죠. 당내에서는 ‘한나라당 2중대다, X맨이다’는 말이 나왔죠. 그때 욕 많이 먹었습니다. 당시 한 언론에서는 절 ‘욕 많이 먹는 정치인 1등’으로 꼽기도 했죠.”

그가 대부분 야당 의원들이 반대한 FTA 비준에 찬성한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신념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일을 지금도 옳았다고 보고 있다. “자원도 없고, 내수시장도 작아 경제를 키울 수 없는데, 미국과의 FTA를 깼다면 국민이 그런 정당에게 정권을 맡기겠어요. 무조건 강경론으로 일관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당장은 욕먹는 정치인으로 꼽혔지만,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 중 가장 많은 표로 당선된 것은 자신의 철학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그는 지금도 확신한다. “당시 FTA 체결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이 손해를 봤다는 논리를 펼치며 비판했지만, 나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뒤 오히려 미국에서 재협상을 하자고 달려들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손해보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그가 당시 일을 끄집어낸 것은 현재 야당에서 강경론이 득세하고 있는 것에 대한 그의 시선과 무관치 않다. 아쉽게도, 한국당이 옛날 자신의 야당처럼 ‘야성’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국회 정상화 파행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하긴 야당이 저러는 것,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도 야당때 그랬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안정적 세력이 모두 뿌리가 뽑혔으니, 새롭게 뭔가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민주당도 비슷했단다. 노무현 정부에서 MB 정부로 정권이 넘어가면서 민주당 역시 한참 흔들렸다. 그 과정에서 통합과 분열을 반복했다. 지도부는 수시로 바뀌면서 이미지가 나빠졌고, ‘발목만 잡는 정당’이라는 눈총을 받으며 허우적거렸다.

그래도 한국당을 위해서, 궁극적으론 좋은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을 위해서도 야당이 대안 수권정당의 모습을 갖춰야 할때라고 그는 조언한다. “지금 야당 내부에서도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꼭 필요한 여권의 주장은 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국회정상화를 위한 나름 해법이 있냐고 묻자 선문답 하듯이 단어 두개를 꺼내놓는다. ‘주국야광(晝國夜光)’, ‘주국말광(週國末光)’이란다. 무슨 뜻이냐고 재차 물으니 ‘낮에는 국회에서 일하고 밤엔 광화문에서 집회하든지 투쟁하는 게 주국야광이고, 주중에는 국회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광화문에서 집회하든지 투쟁하는 게 주국말광’이란다. 즉, 국회 본연의 임무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민생문제, 법 개정, 예산 문제 등을 국회서 논의할 게 정말 많습니다. 국회가 해야할 본연의 일을 외면하고 (야당이 지금처럼 투쟁만 하면) 중도층을 절대 흡수하지 못해요. 장외투쟁만 하는 야당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사실 국민들도 좋은 평가를 주지 않아요.”

김 의원은 자신도 야당 원내대표 시절 장외투쟁을 하자는 목소리가 거셀때도 투쟁은 투쟁이고, 국회 본연의 일은 소홀해선 안된다고 숱한 설득작업을 벌였다고 했다. 


▶부작용 다 드러난 소주성, 하반기부터 본래 성과 나올 것=김 의원은 과거 경제부총리 시절에도 ‘X맨’으로 몰리기도 했다. 법인세 인하와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경제 논리로 한 말이었는데, 진보진영 일각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보수정당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경제통인 그가 소신파였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철학인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그의 견해는 일관된다. 현재 소주성 부작용과 함께 비판이 뒤따르지만 ‘소주성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 성과는 조만간 올 것으로 믿는단다. “소주성이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난 대선때 후보들 모두 소주성 공약을 했어요. 문재인 정부의 단독 정책은 아닙니다. 다만 후보공약을 정책적으로 펼치려면 진지한 검토를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사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탄핵’ 후의 보궐선거 성격이었기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꾸려 공약을 재단장하고 보완할 틈이 없었다. 말이 많은 최저임금 역시 인수위를 거쳤다면 좀더 세련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짙다. “소주성이나 최저임금 등을 놓고 인수위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 좀더 보완된 내용을 시행했으면 현재의 부작용이 덜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문재인 정부의 운명이라면 운명이죠.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공약한 내용을 안지킬 수는 없잖아요?”

그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장으로 현 정부 정책의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린 인물이다. 그런 김 의원은 경제정책 자체는 옳은 방향이라고 했다. “소득주도성장이 문제만 있다면 IMF(국제통화기금)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국제기관이 왜 권고했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안 가본 길이었죠. 그래도 가야할 길 아닙니까. 그리고 소주성의 부작용은 이미 다 나왔기 때문에 올해 하반기부터 본래의 성과가 나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역시 가야할 길이라고 김 의원은 역설한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주창했지만, 그때 유니콘 기업은 2개밖에 없었어요. 중국, 미국은 수많은 유니콘 기업이 있었는데 말이죠. 문재인 정부 들어 그것이 8개가 됐어요. 기술벤처를 성장동력으로 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유효했다고 봅니다.”

정부의 재벌정책과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단다. 지난 수십년간 재벌이 대한민국 경제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재벌 1~2세대는 ‘리스크 테이커(위험 감수자)’였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불도저 정신’은 그래서 나온 말 아닙니까. 이들은 도전정신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 3~4세는 ‘리스크 매니저(위험 관리자)’들 같아요. 기업가가 아니라 자본투자가인 것이죠.”

최태원 SK 회장의 사례는 그런 점에서 그가 주목하는 것이다. “최 회장이 2억원을 주면서 사원에게 창업을 해보라고 했다는 데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봅니다. 이래야 해요. 기업도 여태 생각지 못한 혁신으로 줄달음칠때 대한민국 경제도 용솟음칠 겁니다.”

정리=홍태화 기자/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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