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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DJ의 정치동지’이자 여성운동의 큰 별 故 이희호 여사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했다. 향년 97세로 일기를 마친 이 여사의 삶은 ‘정치인 김대중’을 떼어놓고는 설명이 어려울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 이 여사를 가리켜 “정치적 동지이자 영원한 동반자 관계”라는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실제 그랬다. 군사독재 시절, DJ는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정치적 망명을 하고 사형선고를 받는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런 DJ를 든든히 지켜주고 더 강한 투쟁을 독려했던 건 이 여사였던 것이다. 마침내 DJ가 민주화를 완성하고 평화적 정권 교체의 숙원을 이루자 정치권에선 “정권 지분의 40%는 이 여사 몫”이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여사는 ‘대통령 김대중의 아내’ 이전에 그 자신의 역할만으로도 한국여성인권 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거목으로 평가받기에 손색 없는 삶을 살았다. 우선 그는 한국 여성운동의 근간을 마련한 선구자라 할만하다. 일제의 교육긴급조치로 이화여전에서의 학업을 중단한 이 여사는 해방 이후 서울대 사범대에 다시 진학했다. 이 때부터 이 여사는 총학생회 사범대 대표를 맡는 등 적극적인 여성운동에 관여했다고 한다. 활발한 학생회 활동 자체만으로도 얌전히 공부만 하는 여학생의 틀을 깨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졸업 후 미국 유학까지 마치고 귀국한 그는 본격적인 여성 인권운동에 나섰다. 1세대 여성운동가라 할 수 있는 이태영 김정례 등과 함께 여성단체와 관련 연구소를 창설하기도 했다. DJ가 대통령이 된 뒤에는 지금의 여성가족부 전신인 여성특별위원회 출범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기에 이 여사 자신도 평소 “여성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 서울 동교동 자택에 ‘김대중’ ‘이희호’ 두 개의 문패가 나란히 걸려있는 것은 여성 인권 신장을 염원하는 그의 작지만 큰 외침인 셈이다.

김 전 대통령 타개 후에는 한반도 평화 운동가를 자처하며 그 역할에 게을리 하지 않은 것 역시 이 여사다운 모습이다. 노구를 이끌고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북한 어린이 돕기 등 김대중 정부가 주창했던 햇볕정책의 맥을 잇고자 마지막까지 노력했다. 드물지만 공개석상에선 활발한 남북 교류와 대화를 호소했으며 꽉 막힌 남북관계에 많은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전쟁, 독재와 민주화라는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맞서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왔던 그는 이제 영면에 들었다. 그가 남긴 행적은 남은 이들에게 큰 울림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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