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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명국 에티오피아를 가다④) 불가사의 ‘제2 예루살렘’ 랄리벨라
랄리벨라 기오르기스 교회

[랄리벨라= 헤럴드경제 함영훈 선임기자] 여행의 마지막 날을 앞둔 전야는 늘 그렇듯, 아쉬움과 감동이 물결치며 흥분감 속에 포도주를 찾게 된다.

정든 에티오피아와의 이별, 그새 우정이 진하게 쌓인 동반자들과의 헤어짐 때문에 그 아쉬움을 달래려 ‘신의 물방울’에 의탁하는 것이다.

호텔 바에 둘러앉아 아프리카의 재발견, ‘그간 우린 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진면목을 몰랐을까’에 대한 상념, 거꾸로 되짚어 보는 세계사,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좋았던 곳, 잘 생긴 에티오피아 남정네에 대한 촌평, 이곳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 기린 대신 당나귀 얘기, ‘신대륙은 장사하러 간 이방인이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원래 살던 사람들의 조상의 조상이 이미 발견해 점유하고 가꾼 곳’이라는 얘기 등을 거론하노라니 에티오피아 대표 화이트와인 리프트밸리(Rift Valley)가 두 병, 네 병 비어갔다.

아뿔사! 그만 DSLR 카메라 충전하는 것을 잊고 잠들어버렸다. 여행 마지막날, 에티오피아의 찬란한 아침 햇살에 눈을 떠, 그렇게 부랴부랴 랄리벨라 암굴교회의 대표작 기오르기스 교회 취재가 시작됐다. 옆에서는 바위산일 뿐이고 높은 곳에 올라 기오르기스 교회를 내려다 보니 거대한 돌 십자가가 하늘을 향해 선명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바위산을 위에서 아래로 깎아 가로 세로 높이 모두 12m의 정십자가 모양으로 교회를 지은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3개의 바위산이 11개의 교회로 바뀌었는데, 옆에서 보면 그곳에 교회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높은데서 봐야, 직접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곳, 지상최고의 기도처, 피난처, 크리스트교의 위기가 닥칠 때에도 예배를 볼수 있는 ‘제2 예루살렘’이었다.

DSLR카메라 충전이 안되어도 한 점 부끄럼이 없다. 삼성, 엘지, 사과, 화위 휴대폰 똑따기로도 감동을 담는데 손색이 없다. 문명의 흔적 자체가 이미 걸작이기에, 걸작을 더 걸작스럽게 표현하기 위한 첨단 카메라 기술이 따로 필요없었던 것이다.

아래로 내려가면, 기오르기스 교회 입구에는 죽어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겠다는 어느 사제의 유해가 암굴 속에 미이라가 되어 안치돼 있었다. 겉에서만 볼 뿐, 그 안을 들여다봐서는 안된다.

내부에는 백마를 탄 채 창을 들고 용을 무찌르는 기오르기스 성인이 성화가 걸려있고, 랄리벨라왕의 보물상자도 있다.

보물상자라고 하기에 귀금속과 황실보물이 들어있는 줄 알았더니, 이 교회를 짓는데 쓰이던 끌과 정, 낫 등 도구들이 많다고 한다. 120년이나 걸려 ‘제2예루살렘’을 건설했으니, 이들 녹슨 공사 도구들은 귀금속보다 찬란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교회를 짓는데엔 에티오피아 현지인 뿐 만 아니라 이집트, 팔레스타인 사람도 함께 했다.

암굴교회에서 한국인과 기념촬영을 허락한 원로사제
암굴교회를 연결하는 터널을 빠져나온 한국인 여행자들의 끼부림

매년 에티오피아의 성탄절인 1월 7일이 되면 전국에서 순례객들이 이곳 암굴교회에 모여 미사를 드리고 사제가 축복한 빵을 나눠 먹으며 기원후 33년부터 이어져 오는 축제를 즐긴다.

랄리벨라는 약 1000년전부터 300년 동안 자그웨 왕조의 도읍지였다. 1221년 자그웨 왕조는 이 암굴교회 건설을 통해 전성기를 맞는다. 에티오피아 사서에 따르면 랄리벨라왕(1181-1221)은 예루살렘을 방문한뒤 고국으로 돌아가면 새로운 예루살렘을 세우겠다고 맹세했다. 때는 십자군전쟁이 한창이었고, 예루살렘이 위기를 맞던 시대였다.

암굴교회에서 기도하는 한국인 순례객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랄리벨라 암굴교회는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배치돼 있다.

기오르기스가 남서쪽에 뚝 떨어져 있고, 북쪽 그룹에는 단일 암석으로 된 현존하는 최대의 교회(가로 33m, 세로 22m, 높이 11m)인 ‘메드하네 알렘’ 등이 있다. 메드하네 알렘은 그리스 신전을 닮았으며 그 안에는 순금으로 된 십자가가 있는데, 1997년 골동품 딜러에 의해 도난당했다가 회수됐다고 한다.

이 교회 옆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기리는 3개의 상징무덤이 있다.

뛰어난 프레스코화와 조각으로 장식된 ‘마리암’, 랄리벨라 왕이 묻혀 있다고 하는 ‘골고타’, 동굴에 아직 은둔자가 살고 있는 ‘메스켈’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마리암 교회 앞뜰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아기를 못 낳은 여성이 이 연못에서 목욕을 하면 애를 낳을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성모 마리아를 위한 교회이기에 이런 희망과 기대감도 이 연못에 담긴 것이다.

랄리벨라 가브리엘 교회

북쪽그룹과 요르다노스강(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남쪽 암굴교회군에는 가브리엘-루파엘(라파엘) 교회, 메르코리오스, 압바 리바노스, 암마누엘 교회가 있다.

가브리엘 교회는 지옥과 천당을 모두 묘사했고 그 중간지점은 예루살렘의 빵굼터를 닮은 ’신성한 빵집‘과 이어져 있다. 사람 키 보다 약간 낮고 어깨보다 약간 넓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지옥굴에 들어가면 온통 캄캄하다. 왼손으론 앞사람의 어깨를 짚고, 오른손으로는 벽을 만지며 걸어가야 한다. 2분뒤 다시 서광이 스며들고 여행자들은 지옥에서 탈출한다. 길지 않은 체험이지만, 지난날 나의 삶은 어땠는지, 내가 뭘 잘못한 건 없는지 성찰하게 된다. 독실한 신자인 남일여행사 남옥자 이사는 “짧지만 정말 소중한 체험을 한 것 같다”면서 차분하고 교양있는 성품임에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불구덩이에서 선량한 사람들을 구한 가브리엘 천사에게 경배한 뒤 나오면 천상에 도달한다.

암마누엘교회 대사제가 신도를 영접하고 있다.

교회 연결용 여러 동굴들을 헤쳐 나오면 메르코리오스, 압바 리바노스교회를 지나 암마누엘 교회에 이른다. 대체로 암마누엘 교회가 암굴교회군 투어의 종점이다. 붉은색 응회암 석질에 수평으로 문양을 새겨 화려하지 않아도 기품 있는 이 교회 앞 바위굴엔 은둔자가 조용히 묵상하고 있었다.

랄리벨라의 7일자 토요장터
아기자기하면서도 활기찬 랄리벨라 읍내 거리
랄리벨라의 석양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단층지형은 그랜드캐니언을 닮았다.

교회에 들어가면 우리가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사제 중 가장 근엄한 자태의, 붉은 망토를 걸친 대사제가 반긴다. 그의 십자가 지팡이에 입맞춤을 하고 얼굴을 부비면서 나를 낮춘다. 신도가 아닌데도 그 경외로움에 고개를 숙이고 겸양을 일깨우는 시간이었다. 암굴교회 투어를 마치고 나서 때마침 토요일이라면 7일장 토요시장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넉넉한 인심과 산촌 사람들의 애환이 묻어난다.

에티오피아 르뽀는 한국인들에겐 놀라움의 연속이었는데, 이미 수천년 문명을 갖고 있던 그들은 우리가 놀라는 것이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그곳엔 문명인이 살고 있었고, 늦게나마 정보통신, 전자기기라는 이름의 도구를 쓰기 시작했다. 해맑은 웃음과 순수한 품성, 노력하는 삶의 태도를 가진 에티오피아는 머지 않아 탄탄한 역사문화의 펀더멘털 위에 ‘착한 강국’의 신전을 지을 것이다.

[자료 협조=에티오피아 정부, 에티오피아 항공, 혜초여행사]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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