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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명국 에티오피아를 가다③) 묵직한 문화유산 곤다르, 악숨
곤다르 파실게비 궁의 에티오피아인 관광객들
곤다르 파실게비 궁 계란 지붕

[곤다르= 헤럴드경제 함영훈 선임기자] “암마쌩 끄날루”(감사합니다)

미국에서 ‘땡큐’, 태국에서 ‘사와디캅’, 일본에서 ‘스미마셍’, 터키에서 ‘촉싸울’를 듣는 것 만큼이나 에티오피아에서 많이 듣고 많이 하는 말이 ‘암마쌩 끄날루’이다.

감사와 겸양은 정신적 안정감, 자존감이 높은 나라일수록 잘 표현한다.

곤다르와 악숨 등 옛 도읍지에서 만나는 에티오피아의 찬란한 문명은 이 나라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알게 해준다. 감사 인사를 잘 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니네도 외세에 시달렸지?”라면서 잘못된 역사상식으로 질문할 때 매우 기분나빠한다. 에티오피아는 식민지배를 받은 적이 없는 나라이다.

나일강의 원천 타나 호수의 바하르다르에서 곤다르까지는 비행기를 탈 필요없이 차로 가도 2시간이면 닿는다. 곤다르 가는 길에서 만난 풍경이 흥미롭다.

자동차, 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이, 달구지, 등에 짐을 진 당나귀가 느림의 미학 속에 평화롭게 한 길을 간다.

달구지에 마른 풀더미를 실어 나르기도 하고, 사람도 태운다. 달구지가 제 바퀴 크기의 10배는 돼 보이는 초대형 중장비 바퀴를 등에 지고 달린다. 에티오피아 시골의 자연환경속에서 기린과 영양은 볼 수 없었고, 당나귀와 소, 개를 참 많이 봤다. 이들의 무단횡단에 자동차는 친절히 멈춰선다.

바하르다르에서 곤다르 가는길 엄지바위산을 향해 한국인과 에티오피아인이 나란히 걷고 있다.

곤다르에 근접해 가면서 엄지바위산, 악마의 코 바위산을 지난다. 차량이 잠시 멈추면, 잘 생긴 시골총각은 한국 여성 여행자의 도발적인 ‘투샷’ 요청에 순진한 미소를 머금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의 할머니는 한국인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려 하는데, 흥이 많은 한국인에 대한 관심과 환영의 뜻인 듯 하다.

곤다르 네자매 식당의 커피쇼 호스트
한국인 여행자에게 전통음식 인제라를 먹여주는 에티오피아 가이드 에쉬

바하르다르에서 조식하고 출발해 쉬엄쉬엄 오다보니 점심때가 되어 곧바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네자매 식당(Four Sisters Restaurant)으로 향했다. 곤다르의 유네스코 유산 파실게비(Fasil Ghebbi) 궁성 후문에서 가깝다.

8년전 큰언니 테나부터 헬렌, 세넷, 막내인 에덴까지 네 자매 요리, 커피, 인테리어 익스테리어 등 각자의 재능을 살려 레스토랑을 차렸다. 이곳에선 ‘분나 마프라트’라고 불리는 커피예식을 제대로 보여준다. 손님 환영의 뜻이 담긴 현관의 풀 깔아놓기, 전통악기의 연주에 이어 웰컴 커피를 만들어주기 위한 예식을 한다. 세계적 유명세를 타서 그런지 예식에 임하는 여성 커피전문가는 모든 여행자의 카메라에 일일이 시선을 분배해준다. 정통 인제라(발효빵) 요리도 맛볼수 있다. 피데 같은 얇은 빵을 꿀에 찍어먹는 것은 터키와 인도풍습을 닮았다.

곤다르는 1632~1855 에티오피아의 수도였던 곳으로 ,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궁성 안에는 역대 황제의 궁전 유적이 있다. 1979년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모서리 네 개의 탑이 마치 달걀을 얹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달걀성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파실게비 궁을 찾은 에티오피아인들이 한국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 파실게비 유적지는 파실리다스 황제의 이름을 딴 것으로 곤다르 역대 황제들의 거처였다. 건축양식은 첫 도읍지였던 악숨(Aksum)의 전통에 포르투갈의 영향이 가미되어 있다. 또 아랍과 인도 건축의 장점, 예수회 선교사들의 유입으로 인한 바로크 양식의 비대칭, 곡선 예술미도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양식이 다른 이질적인 전각들이 짜임새 있는 건물배치 예술속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900m에 달하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는 교회, 궁전, 수도원 등 독특한 공공건물과 개인 생활공간들을 볼 수 있다. 높고, 건장하며, 우아한 기품때문에 영국 아더왕 전설에 나오는 성 ‘카멜롯’에 비유되기도 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팀은 이곳에서의 촬영을 허가받는데엔 실패했지만, 다양한 영감을 얻어갔다는 후일담도 전해진다.

한국인 여행자들의 재잘거림에 현지인 방문객이 손짓을 하며 반긴다. 이곳에서 화보촬영을 하던 에티오피아유명 모델은 한국인 여행자들과 일일이 기념촬영을 했다. 체험학습 온 에티오피아 아이들은 사자 우리에 한국 여행자가 갇히는 연기를 하자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궁에서 다소 떨어진 지점엔 황실의 목욕탕, ‘수영장 궁전’이 있다. 일찌기 대중들에게 개방했다. 매년 팀켓(Timket) 축제가 열려 아이들에게 세례도 내리고 물놀이를 즐길수 있게 해준다.

이곳에는 크리스트교도가 많지만 이슬람교도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거리에는 야외 탁구를 즐기는 모습, 아이의 손을 잡고 공예품을 구경하는 귀부인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금은 세공, 상아세공, 구리그릇, 피혁 가공이 주된 산업인데, 700~800년전 럭셔리한 생활을 영위했던 도시임을 짐작케 한다.

1694년 개관한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에 교회’가 있는데, 천장에 에티오피아 특유의 천사 얼굴 144개가 그려져 있다. 얼굴 표정이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 불교의 500나한 처럼.

악숨은 에티오피아 최북단 고도(古都)이다. 고대 에티오피아의 중심인 악숨 왕국은 동로마제국과 페르시아와 함께 3각축을 형성했다고 한다.

악숨은 시바여왕 후손이 황제로 군림하던 곳이고, 대비마마로서 시바여왕도 이곳에 한동안 거처했다고 한다. 모세가 신에게 받은 십계명을 기록된 석판이 보관된 곳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악숨은 그래서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이다.

수백개의 오벨리스크가 악숨을 대표한다. 가장 큰 것은 33m에 이른다. 에티오피아 찬란한 역사의 정통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아디스아바바 등 여러 도시에 이 오벨리스크를 닮은 미니어처와 모사품을 설치해두었다. 이탈리아가 두번째 크기 오벨리스크를 약탈해 갔지만 에티오피아의 집요한 청원끝에 유엔의 반환결정이 내려졌다. 오벨리스크 지하 왕 무덤 내 조각상에서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손재주가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시바 여왕의 왕궁 터 역시 악숨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왕궁의 화감암 돌기둥 130여개는 신라 건국무렵인 1세기∼ 4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장구 같은 악기를 두들기며 흥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에티오피아 크리스트교도

에티오피아에서 크리스트교는 4세기부터 악숨의 에자나 왕 치하에서 국교가 됐다. 로마에서 392년에댜 국교가 된 것을 감안하면 에티오피아 크리스트교 정사(正史)가 바티칸을 앞선다. 에자나 황제는 악숨에 아프리카에 최초였을 교회를 지었고, 이 교회의 돌로 된 제단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시온 산에서 왔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이름이 성 마리 시온교회(Church of St. Mary Zion)이다. 이 나라 황제 대관식이 열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교회 예배당에는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신성한 성물인 이동식 사당인 ‘계약의 궤’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매우 드물게 공개되는 이 성물은 시바의 여왕이 낳은 솔로몬의 아들 메넬리크 1세가 솔로몬 왕 시대인 기원전 10세기에 예루살렘에서 에티오피아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모세가 가져온 십계명의 석판도 이 안에 있다고 한다.

곤다르 등지에서 에티오피아 크리스트교의 원류와 중요한 가치를 발견한 한국인 여행자들은 이제 ‘불가사의’ 인공 건축물, ‘제2 예루살렘’ 랄리벨라 암굴교회군으로 향하며 설레는 마음 감추지 못한다.

[자료협조= 에티오피아 정부, 에티오피아 항공, 혜초여행사]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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