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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벤져스 11년·왕좌의 게임 8년]일상 대화~정치 수사…지구를 정복한 ‘긱덤’
양대 시리즈 10여년간 견고한 팬덤 형성
판타지·SF물 주류 견인…‘덕후’세상밖으로
트럼프 “벽이 오고 있다” 등 대사남용 비판도


“내가 ‘왕좌의 게임’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더 놀랍게 만든다”(아와 마다위 가디언 칼럼리스트)

웨스트로스 대륙 ‘철 왕좌’를 차지하기 최후의 전투가 시작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유혈낭자한 전투와 선정적인 장면, 거미줄처럼 뒤얽힌 족보로 점철된 8년에 걸친 대서사시는 이제 불과 한 달여 후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바야흐로 ‘왕좌의 게임’의 시대다. 다수의 매체들이 ‘열풍(fever)’이라 이름 붙인 이 드라마 시리즈의 위력은 매주 일요일 저녁 1000만명이 훌쩍 넘는 시청자들을 텔레비전 앞에 앉도록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 깊게 파고 들었고, 지인과의 대화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 중 하나가 됐다. 한 유명 일간지 칼럼리스트가 “왕좌의 게임을 안봤다는 사실이 ‘나의 성격’처럼 받아들여질 정도”라며 하소연할 정도다.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마블(Marvel) 세계에서는 타노스로부터 우주를 구하기 위한 히어로들의 마지막 전쟁이 끝났다. 지난 11년 간 이어져온 ‘인피니티 사가’는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 속 아이언맨의 “헤이 포츠(Hey, Potts)”란 대사와 함께 긴 여정의 끝을 마무리했다. 엔드게임 열풍 역시 왕좌의 게임의 그 것과 다르지 않았다. 22편의 어벤져스 시리즈를 복기하고, 마블 시리즈들이 제시한 ‘떡밥(이스터에그)’를 분석하고, 앞으로 이어질 마블 세계관을 전망하는 등 ‘전문적 지식’들이 유력 매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엔드게임과 왕좌의 게임은 어떻게 ‘우주를 정복했나’’란 제하의 기사를 통해 “어벤져스와 왕좌의 게임의 팬들은 길고 복잡하면서 상세한 네러티브를 오랜 시간 쫓아왔다”면서 “오늘날 대중문화는 유례없는 흥분으로 가득차 있다”고 전했다. 시리즈가 약 10여년에 걸쳐 견고한 팬덤을 형성하면서 과거 비주류로 분류됐던 판타지, SF물을 주류로 끌어올렸고, 결국 드라마와 영화 ‘덕후(geek)’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강력한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가디언은 이를 ‘긱덤(geekdom, 괴짜ㆍ전문가의 왕국)’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일상을 ‘지배’할 정도로 강력하게 대중문화 속에 파고든 사례는 드물다. 동시에 일반 대중이 상업 콘텐츠에 포함된 내러티브나 인물관계, 사건 등에 깊게 관심을 가지는 현상 역시 흔치 않다. 엔드게임과 왕좌의 게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과거 아바타, 소프라노스와 같은 영화ㆍ드라마의 흥행과 차별화 되는 것은 이 부분이다.

가디언은 “대중들은 토르의 지방흡입술에서부터 아리야 스타크의 젠더 이슈, 그리고 엔드게임을 ‘해부’한 20분짜리 유튜브 영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서 “이제 사람들은 SNS, 온라인, 지인과 함께 공상과학 콘텐츠에 담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함께 이야기를 하기 원한다”고 분석했다.

오늘날, 자신이 왕좌의 게임 혹은 엔드게임에 열광하는 ‘덕후’라는 사실은 여론의 공감대를 일으키기 위한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영화와 드라마 속 유명 대사들을 가져다쓰기 시작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중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정치적으로 남용되는 현실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왕좌의 게임의 명대사 ‘겨울이 오고 있다’를 누구보다 쏠쏠하게 활용하고 있는 인사 중 한 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가 오고 있다’라든가 ‘벽(멕시코 국경 장벽)이 오고 있다’ 등과 같은 비유를 수 없이 반복해왔다. 왕좌의게임을 제작한 HBO가 대통령에게 ‘그만하라’고 요청한 적이 있을 정도다. 마이클 고브 영국 환경부 장관은 “만약 우리가 브렉시트 협상안에 투표하지 않는다면 ‘겨울이 다가올 것’”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왕좌의 게임을 인용해 자신들의 메시지에 ‘초를 쳐야겠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모습”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로감을 느낀 왕좌의 게임 제작자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당시 ‘겨울이 온다’면서 그에게 화답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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