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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누구냐, 우린?
지난 7일자 뉴욕타임스(NYT)의 한 기사는 미국 미시건 주(州) 초등학교 사회 교육 표준을 둘러싼 논란을 다뤘다. 핵심은 미국 헌법 혹은 미국 정치의 근본 가치를 ‘민주주의’(democracy)로 볼 것인가, ‘공화주의’(republic)로 정의할 것인가이다. 얼핏 보면 자신들이 선호하는 당명을 끼워넣으려는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단순한 논쟁인듯하지만, 좀 더 깊게는 미국 역사와 정치, 헌법을 둘러싼 자유주의(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근본적인 대립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NYT 설명에 따르면 미국에선 각 주(州)별로 교육위원회(the State Board of Education)를 구성해 ‘(교육)표준’을 만드는데, 강제적이지는 않지만 교사 대부분이 참고하고 따르는 지도지침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미래의 유권자’인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논란은 최근 미국 내 보수주의 단체들이 새로운 안을 제시하면서 불거졌다. 예를 들어 미시건에서 보수단체들이 제안한 안은 미국의 정치제도를 표현하면서 종전의 “핵심적인 민주주의 가치” 대신 ‘민주주의’를 삭제한 “핵심 가치에 기반한 입헌 공화정”이라고 했다. 또 ‘시민의 참여’를 ‘시민의 역할’이라는 용어로 대체했다. 또 보수주의자들은 “학교 교육이 국가의 과오(sin)보다는 ‘승리의 역사’(triumph)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표준안은 기후변화, 낙태권, 동성애자 인권 등의 의제를 아예 지워버렸다. 시민의 권리로서 ‘정부의 교체 혹은 폐지’를 포함시켜 가르쳐서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사회ㆍ역사교육에서 보수-진보 갈등은 미시건 뿐 아니다. 2010년 텍사스주 교육위원회는 보수 위원들의 주도로 미국 정치 설명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삭제했으며, 조지아에서는 논란 끝에 2016년 ‘대의민주주의’와 ‘공화정’을 병기(representative democracy/republic)했다.

미국 뿐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민족ㆍ애국ㆍ국수주의 등의 ‘배외주의’, 경제적으로는 보호주의가 확산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이같이 새로운 형태의 ‘이념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헌법’과 ‘역사’가 전선이고, 전쟁의 핵심은 ‘정체성’이다.

이른바 ‘정체성 정치’가 세계의 보편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의제 중심에는 백인ㆍ남성ㆍ미국인ㆍ기독교인ㆍ이성애자 등의 ‘주어’가 숨겨져 있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자국을 ‘유대인의 나라’로 정의했다. 최근 NYT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선 공산주의와 시진핑 사상을 학습하는 앱 ‘쉐시창궈’(學習國)가 정부의 사실상 강제권유 속에서 사용자 1억명 이상을 달성했다.

한국도 멀지는 이같은 추세에서 멀지 있지는 않다. 박근혜 정부에선 ‘건국절’과 ‘역사 국정교과서’가 논란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개헌안 속 ‘자유민주주의’ 비중을 놓고 설왕설래했으며 친일청산 범위 및 방식,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유공자 인정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정치는 늘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을 재구성한다. 정체성이야 말로 정치의 가장 첨예한 전선이며 정치가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말하자면 이렇다.

‘누구냐, 우린?’ 

이형석 인터내셔널섹션 에디터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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