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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인간 ‘문명-파괴’ 함께 한 6000년…
6000년전 유라시아 초원서 사육 시작
야금술 보유 얌나야 바퀴 수레 개발
‘말이 끄는 전차’ 치명적 전쟁도구로…

전환기 실크로드따라 활발한 무역전개
이동경로에 따라 문화·종교·언어 전파
유목민 중심 기마문명론 새 시각 제시


“기원전 1000년 무렵, 수 세기에 걸쳐 목축·사냥·침입으로 연마된 말 타기 기술이 완전한 군사적 역량으로 발전했다.(…)고속의 말 타기는 지리상의 거리를 급격히 단축해 사회적·정치적 지평을 영구적으로 변화시켰다.“(‘말의 세계사’에서)

‘총, 균, 쇠’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인류 문명의 발전 요인을 순전히 지리·생태학적 환경에서 찾는다. 농업을 가능케한 경작용 식물종과 가축종이 다양하게 분포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특히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길고 기후가 일정해 풍부한 식물종과 다양한 가축종이 자랄 수 있었고, 그 결과 농업화와 함께 빠르게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정주형 문명발전론과 다른 시각이 있다. 지금까지 주변부로 인식돼온 유목민, 기마문명론이다. 4천년 전 말을 사육할 수 있게 된 초원지대 유목민은 말의 이동성을 바탕으로 청동기 문화와 바퀴를 만들어내면서 인류문명을 발전시켰다는 주장이다.

‘말의 세계사’(글항아리)는 그런 말과 인간의 6000년 공생의 역사를 장대하게 그려낸다. 신진 인류학자인 피타 켈레크나는 교역과 문화 교류를 가능케한 말의 신속한 이동성과 함께 군마를 바탕으로 이뤄진 철저한 파괴의 양상 등 말이 인류에 끼친 이중성을 여섯 시기로 나눠 나란히 좇아간다.

말이 인간에 의해 사육된 건 기원전 4천년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였다. 이미 목축을 하고 야금술을 보유했던 흑해-카스피해 연안의 인도 유럽어족 농경민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초기 목축인 집단인 얌나야는 가장 효율적으로 목초지를 이용했는데, 이들은 혁신적인 바퀴달린 이동수단을 확보함으로써 사방으로 이동과 팽창을 촉진하게 된다.

기원전 3000년 경 얌나야 문화는 초원지대 내부 깊숙이 들어가 캅카스산맥으로 이동한다. 최초의 청동기 농사도구들이 만들어진 곳이다. 초원지대의 이들 농목축자들은 소, 말, 가죽을 남캅카스산맥의 풍부한 금, 은, 구리와 교환했다. 이들은 삼림초원지대와 북방수림대의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주민들에게 금속을 전해주는 중개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들의 이동은 기원전 2500년 경엔 우랄강 너머로 확대된다. 단단한 청동무기 제조에 우랄산맥의 금속 광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교한 야금술을 발전시킨 건 안드로노보문화였다. 이때 바큇살이 있는 전차가 만들어진다. 소가 끄는 시속 3킬로미터에서 시속 33킬로미터로 속도가 10배 빨라진 것이다. 빠른 말이 끄는 전차는 치명적인 전쟁도구로 사용되게 된다.

기원전 2000년 경엔 대규모 유목민 무리가 형성되고 전사 엘리트들이 등장하면서 전쟁이 벌어진다. 부족들은 내전과 기후변화 때문에 원거리 이동을 해야 했고, 결국 대규모 민족이동을 야기했다. 기마 세력은 변방 초원지대 거주지를 벗어나 정착 문명의 도시 중심지들을 침략함으로써 고대 중심 지역에 국가를 세우게 된다. 


특히 히타이트인들은 전차용 말을 잘 훈련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비늘갑옷과 활, 화살, 칼, 창으로 무장해 정주형 국가들을 압도했다. 마력을 활용, 피정복민들을 자신들이 터를 잡은 아나톨리아 변방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다.

기원전 제1천년기말 경 중국과 유목민 사이의 국경 교전은 초원지대 전역에 커다란 격변을 초래했다. 그 결과 여러 부족 집단이 남쪽으로는 인도 방향으로, 서쪽으로는 유럽방향으로 멀리 밀려났다, 이같은 유목민의 이동에 따라 중국의 발명품들이 서구문명과 접촉하게 됐고 서쪽의 사상과 생산품도 동쪽으로 유입됐다.

기원전 제1천년기가 끝날 무렵엔, 전차와 기병이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 등 모든 문명의 중심지에 도입됐다. 기원전을 마감하는 전환기 무렵에는 서방과 동방사이에 유목민들의 실크로드를 따라 무역이 활발히 전개됐다. 말이 오가는 유럽과 인도, 중국을 따라 위대한 종교들이 전파됐다.

기마 민족의 전쟁과 이동은 더욱 규모가 커져 기원후 천년 전기, 화려한 전차문화를 자랑했던 로마는 기마민족 중 하나인 서고트족의 침입에 무너졌다. 7세기에는 남쪽 사막에서 온 아라비마 기마 유목민들이 기세를 높여 동쪽으로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까지, 서쪽으로는 서고트족의 스페인, 남쪽으로는 가나의 금 자원을 좇아 사하라 사막까지 건너갔다. 아리바아 문화는 활발한 소통력으로 다양한 지식을 발전시켰지만 종교적 분열은 더욱 커갔다. 종교 갈등은 셀주크 유목민의 아라비아 침입과 십자군의 도전으로 더 악화된다.

저자는 말이 있는 문명과 말이 없는 문명이 어떻게 운명이 갈렸는지, 아메리카 대륙을 통해 보여준다.

9000년동안 말이 멸종상태였던 아메리카 대륙은 말이 없었던 탓에 문명발전이 더뎠고, 스페인이 콜럼버스에게 제공한 말과 수백명의 기독교도 기마병에 의해 수천만명 이상이 살고 있던 신세계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저자는 이는 이후 기마군국주의의 모델로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말은 종교의 전파에도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가령 아랍인들은 사막의 말을 타고 동쪽으로 탈라스와 인더스강 하류까지, 서쪽으로 톨레도까지, 남쪽으로 가나까지 이슬람교를 매우 빠르게 전파시켰다. 언어도 말을 따라 이동했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쓰고 있는 인도 유럽어족의 대부분은 유라시아에 살고 있으며, 이는 수천년 전 기마인 팽창에 따른 결과물이라는게 저자의 분석이다. 인도 유럽어족에게 전하는 말과 관련된 다양하고 풍부한 신화를 고찰한 대목도 흥미롭다.

책은 농경중심의 인류문명사와는 다른 주변부로 이해돼온 유목민 중심의 기마문명론을 제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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