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현장에서] 예타, 국회의 두 얼굴
“4대강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서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생략시켜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환경재앙과 국민 혈세 22조원 낭비였습니다.”

지난 2015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4대강 사업의 예타 면제를 비판하며 이 같이 말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예타 범위를 강화하는 법을 내놓는 등 예타 면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4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역전됐다. 문재인 정부는 예타 면제사업 23개를 선정했다. 총 24조원이 넘는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된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4대강 사업비보다 2조원이나 많은 금액이다. 예타 면제 사업 23개 가운데 7개는 과거 이미 예타를 받았지만 탈락했던 사업이다.

과거 예타 면제를 극도로 반대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의 결정에 대해 “시의적절한 조치”라며 일제히 반겼다.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이번 면제 결정은 각 지역 성격에 맞는 필수 인프라 기반을 확충해 혁신 성장판을 열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경제ㆍ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 의장도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 살기 위한 균형발전 숙원사업을 추진하는 건 정부의 의무”라고 했다.

자신의 지역구에 예타 사업이 선정된 의원들은 일치감치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인천 계양을이 지역구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영종과 신도를 연결하는 평화도로 사업이 예타 면제 사업에 포함됐다.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이번에 포함되지 않은 신도~강화도 구간 건설사업도 정부주도 사업으로 추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여당 뿐만 아니다. 과거 4대강 사업의 예타 면제를 옹호했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반대 상황으로 돌아섰다. 정부의 예타 면제 발표에 대해선 “선심성 현금 살포”라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김무성 한국당 의원은 30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국가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며 복지를 늘리는 것인데 법을 위반하며 24조원의 SOC 사업을 예타 없이 하는 것은 재정 건전성을 파산시키는 잘못된 일”이라며 “역사는 문 대통령을 국가 재정을 파탄시킨 주범으로 기록할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예타 면제는 특별한 일 아니면 시행해선 안될 것”이라며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된다. 문재인 정부가 포퓰리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 경제는 계속 내리막길 걸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지도부 입장과는 다른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작 예타 면제 사업이 결정된 야당 지역구 의원들은 흐뭇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구 의원들은 예타 면제 사업 발표 전까지 자신의 지역구 역점 사업을 예타 면제 대상에 포함시키고자 오랫동안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경북 김천이 지역구인 송언석 한국당 의원은 “김천 시민의 50년 숙원사업인 남부내륙철도 예타 면제와 문경~김천 철도 예타 선정을 환영한다”고 했다. 충북 지역구인 박덕흠 한국당 의원도 충북선 고속화 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 면제 대상에 선정되자 크게 반겼다.

예타를 면제 받은 사업이 국가적인 애물단지가 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4대강 사업에 이어 수천억원이 투입된 전남 영암의 영암 포뮬러원(F1) 사업도 지자체에 빚더미만 떠넘긴 채 애물단지가 됐다.

이번 사업에 투입되는 국비만 총 18조원이다. 국민들의 ‘피와 같은 세금’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 엄청난 혈세가 투입되는 과정에서 사업의 사업성과 효율성을 따지는 유일한 장치인 예타는 생략된다. 예타가 생락된 사업은 완공 이후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명확히 묻기 어렵다. 4대강 사업이나 포뮬러원 사업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시민단체들이 예타 면제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정작 국민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국회는 내년 총선 준비에만 급급하다. 지역구 득실 계산에만 몰두하며 혈세 낭비 걱정은 뒷전이다. 국회의원들이 표심에만 신경 쓰는 사이 우리 혈세는 전국 곳곳에서 벌어질 ‘삽질’에 쓰이게 됐다. 

이현정 정치섹션 국회팀 기자 rene@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