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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선한 동기, 나쁜 결과’
#1. 집앞 단골 편의점 사장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정말 최저임금인상 때문에 어려운지. “최저임금이 2년 새 30% 올랐다. 주휴수당까지 합치면 시간당 1만원이 넘는다. 쪼개기 알바생을 쓸 수밖에 없다. 서로 힘들다. 점주는 꾸준히 일할 사람을 구하고 있고, 직원 역시 더 일하고 싶지만 현실은 주휴수당 때문에 어렵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고 싶다”

#2. 며칠 전 식사 자리. 서울시내 한 대학 관계자분도 있었다. 자연스레 8월 시행될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이 화두가 됐다. 현실을 물었다.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법이 시행되면 방학 때도 임금을 줘야 한다. 인건비가 오를 수밖에 없다. 학생수는 줄고, 11년 째 등록금이 동결됐다. 이를 감당할 대학은 많지 않다. 시간강사를 줄일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최저임금법과 강사법의 취지는 ‘선’(善)하다. 저소득층 임금을 올려주고, 불안정한 시간강사들의 지위를 개선하는 ‘착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인상된 최저임금에 기뻐해야 할 알바생들은 정작 일자리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근 소상공인 99.2%가 주휴수당을 지급하는 데 부담을 갖고 있다는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정부가 카드수수료를 낮추는 등 지원책을 내놨지만 미봉책이다.

강사법의 경우, 대학들이 비용부담으로 올 1학기부터 시간강사 강의배정을 줄일 움직임을 보이자 시간강사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급기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3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총회 자리에 참석해 대학총장들에게 시간강사 처우개선 노력을 호소했다. 하지만 현실적 문제가 타개되지 않은 대학들의 고민은 여전하다. 올해시간강사 처우개선용 예산(288억원)은 전체 예상비용(2300억~3300억원) 대비 턱없이 부족하다.

법과 현실이 따로 놀다보니 해결책은 갈수록 꼬이고 갈등의 골만 깊어진다. 최저임금법, 강사법 뿐만 아니다. 지난해 정부가 투기수요억제를 위해 내놓은 9ㆍ13 부동산 대책은 대출을 너무 옥죄는 바람에 ‘돈없는 실수요자’들의 내집마련 기회를 어렵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아울러 강남 등의 ‘똘똘한 한채’에 수요가 몰리면서 정책 목적과 정반대의 결과를 드러낸 ‘정책의 역설’을 보여줬다. 최근의 부동산 공시가격 인상은 조세형평성 취지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상승속도와 세부담 증가로 납부시점에는 국민들의 ‘조세저항’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서울과 고가주택 등 특정 지역과 계층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를 둘러싼 사회계층간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독일의 정치ㆍ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그의 책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선한 동기만으로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하면 안 되고, 행위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신념실현 자체에 집착하는 ‘신념윤리’를 경계하고, 결과와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줄 아는 ‘책임윤리’를 강조했다.

정책수립과 실행과정에서는 시각에 따라 이해관계가 얽힐 수밖에 없다. 이를 잘 풀어내 최선의 결과물을 이끌어 내는 게 정부 역할이다. 하지만 ‘선한 동기’가 현실에서는 ‘나쁜 결과’로 나타나고, 정책수혜자마저 체감하지 못한다면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거센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는 것은 단단한 나무가 아니라, 바람에 몸을 맡기는 대나무이다. 정부가 현실을 외면하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닫는 순간, 우리의 미래도 닫힌다.
 
권남근 소비자경제섹션 에디터 happy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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