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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혈압·우울증·불안… “과식본능 유전자 너 때문”
영양원 부족대비 몸에 에너지 저장
과잉보호기제 선사시대부터 작동
현대인 고열량 음식섭취 활동은 감소
‘살인병기 둔갑’ 착한 유전자의 역설
DNA·RNA 직접수정 등 대안도 제시


“우리 유전자는 현대 사회의 급속한 변화 속도와 발맞춰 돌연변이를 할 수 없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 되어 버린 병들이 우리가 자손을 퍼뜨린 다음에 우리 몸을 공격하고 그 아이들도 다시 똑같은 일을 겪게 되는 한, 자연 선택 과정은 그런 환경 변화에 유리한 유전자를 선택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 (‘진화의 배신’에서)

비만은 당뇨 등 각종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건강의 적으로 불린다. 국내 비만 환자는 매년 약 40만 명이 늘고 있고, 미국인의 3분의1은 비만이라는 통계가 있다. 원인은 단순하다. 소비하는 열량보다 섭취하는 열량이 많기 때문이다.먹을 게 널려 있는 현대인들에겐 좀 억울한 면이 있다. 우리 몸은 어떻게든 열량을 축적하는 쪽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음식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 에너지를 저장하도록 발전해온 과식본능 유전자가 활동성이 줄고 먹을 게 넘쳐나는 시대에 거추장스런 존재가 된 것이다.

세계적인 심장병 전문의이자 컬럼비아대학병원장인 리 골드먼 박사는 우리 유전자가 현대의 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생존에 매우 유리한 어떤 돌연변이 유전자가 인류의 90%에게 유전되려면 100세대, 즉 2000년이 걸린다.

골드먼 박사는 ‘진화의 배신’(부키)에서 우리 몸이 어떻게 지금처럼 프로그래밍됐으며,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기여해온 탁월한 유전형질이 어쩌다 삐그덕거리며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게 됐는지, 대안은 없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해준다.

우선 현재 인류가 생존·번영해온 20만년(1만세대)은 돌연변이의 자연선택 과정으로 설명된다. 인간의 DNA는 그대로 복제되지만 1억개에 1개꼴로 돌연변이가 나타난다. 따라서 자식은 부모와 다른 염기쌍이 보통 65개 존재한다. 무작위로 시작된 돌연변이는 이후 세대에서 충분히 유익하면 영구화되고 그렇지 못하면 금방 사라진다.

저자는 수렵 채집시대 인류로부터 산업혁명이전까지 인류의 생존에 크게 기여해온 유전형질로 배고픔과 갈증, 두려움, 혈액응고 능력을 꼽는다.

우리몸은 영양원이 모자랄 때를 대비해 몸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방식을 작동시켜왔다. 1800년대초 아메리카 원주민의 식생활에 관한 보고에 따르면, 사냥감이 풍부하게 잡힌 날, 한 사람의 고기 섭취량은 무려 4kg에 달했다. 하루에 1만2000칼로리가 넘는 열량을 섭취한 것이다. 이는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적인 일이었다. 과식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는 얘기다. 음식을 아무 때나 손에 넣게 된오늘날에도 과식본능은 그대로 작동한다. 우리의 뇌는 음식이 많이 들어와야 포만감을 느끼는데 현대의 음식은 수렵 채집시대보다 열량 밀도가 높아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게 된다. 그런데다가 활동량은 갈수록 줄고 있다. 체중을 줄이기라도 하면 우리몸에서는 입맛을 돋우는 최소 일곱가지의 호르몬과 분자의 분비가 상승한다. 이 물질들의 분비수준은 한번 높아지면 몇년간 지속된다. 음식을 되도록 많이, 다양하게 섭취하도록 우리몸이 프로그래밍된 탓이다. 다이어트는 한마디로 이런 우리의 유전자와 매일 사투를벌이는 일이다.


현대 고질병으로 알려진 고혈압 역시 생존에 유리한 역할을 유전형질이 원인이다. 고혈압의 95퍼센트를 차지하는 본태성 고혈압은 나트륨 조절장치가 잘못돼 생긴 병이다. 탈수증으로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발전시킨 형질인 체내 나트륨을 보존하거나 동맥을 수축시키는 과잉보호 기제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수렵시대 나트륨 섭취는 0.7g으로 충분했지만 현대인의 나트륨 섭취는 평균 4배가 넘는다. 현재 한국은 3.89g이다. 과도한 나트륨 섭취에도 우리 몸의 과잉보호기제는 선사시대처럼 작동한다. 문제는 더 많은 나트륨 섭취가 과잉보호기제 성향을 더욱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하루 평균, 나트륨1g을 더 먹을 때마다 고혈압이 될 확률은 17퍼센트 높아진다. 오래 전 탈수증을 방지하는데 도움을 준 생존장치가 오히려 치명적인 무기가 된 것이다.

10명 중 1명이 앓고 있다는 현대인의 우울증, 불안도 마찬가지다. 각종 폭력과 물리적 위험에 매일 직면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은 죽음이나 다름없던 무리에서 쫒겨나지 않기 위해 심리적 생존전략을 발전시켰다. 두려움, 불안, 공포, 순종적 태도, 슬픔, 우울감 등이 바로 그런 보호기제들이다. 이들은 폭력과 비명횡사에서 생존하도록 돕지만 잠재적 위험에 대한 몸의 과도한 반응은 폭력 자체 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다.

특히 죽음에 이르는 폭력은 줄었지만 구석기시대와 다른 다양한 상실과 실패의 상황에 더 많이노출된다는 점에서 이 보호기제들이 역작용을 일으킬 공산은 크다. 저자는 우울증이야말로 심리적 생존본능이 낳은 가장 심각한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인류의 생존에 혁혁한 공을 세워온 착한 유전자들이 현대에서 살인병기가 됐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진화의 역설이다.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안도 모색한다. 다이어트, 운동, 소금 섭취 줄이기, 심리치료 등의 노력 외에 현대 첨단 과학과 의학적 해결 방식을 소개한다. 가령 자연선택 보다 빨리 유전자를 변화시키는 유전자 치료법이나 불리한 DNA나 RNA를 직접 수정 수선하는 방법, 유전자를 후성유전학적으로 변화시켜 기능을 바꾸는 방법 등이다.

내 몸에서 인류의 20만년 진화를 읽어내고, 몸이 작동하는 방식과 현대질병에 대한 이해까지 명쾌한 그림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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