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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행에 참가한 홍대용 “삼궤구고두례는 욕된 의식”


조선의 사신들이 북경에 다녀온 기록인 ‘연행록’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 현재 600여종이 출간돼 있다. 여기에는 조선인들이 연행 중 관찰한 중국 각 지역의 풍습과 문물, 대 중국 인식 뿐 아니라 중국의 지역색 등도 담겨 있다.

김민호 한림대 교수가 쓴 ‘조선 선비의 중국견문록’(문학동네)은 그 중 20여종의 연행록을 통해 각 시기에 따라 조선 사신들이 중국 지역을 어떻게 달리 느끼고 인식했는지 살폈다.

조선 사신들은 대체로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넜다. 청대의 경우 봉금정책으로 실질적인 국경은 압록강을 건너고도 47㎞를 더 가야하는 책문(변문)이었다. 조선 사신들만 드나들던 길이다. 의주, 압록강, 책문을 통해 비로소 중국 땅을 밟지만 낯선 경관, 이국적인 체험이 시작되는 곳은 요동벌이었다. 광막한 요동벌을 접한 감동을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번 울 만하구나”며, ‘호곡장론’을 폈다.

사신들은 이렇게 저마다 기대와 감동, 두려움으로 국경의 밤을 기록했다.

1765년 11월27일 홍대용은 중국으로 들어가면서 “수십 년 평생의 원이 하루아침의 꿈같이 이뤄졌다”며 벅참을 노래했다. 일찌기 볼모로 심양에 갔다온 인평대군이 1656년 국경을 건너면서 “심회는 더욱 말할 수 없었다”고 술회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1780년 박지원에 이르면 또 달라진다. 박지원은 책문에 도착해, 변두리임에도 벽돌집과 반듯한 길, 수레와 화차가 늘어선 걸 보고, 주눅이 들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밝은 눈으로 두루 살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런가하면 1574년 명대에 사행을 다녀온 허봉은 통군정에 올라 중국쪽을 바라보니 “호산이 칼과 창이 줄을 선 것”같다며, 험악한 이미지를 표현했다. 명대 사행의 경우엔 바로 중국 땅으로 들어갔기에 청대와 달리 대단한 기대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연행을 떠날 때 국경인 의주에선 반입금지 물품을 조사했는데, 청나라에 갖고 가지 못하는 물품들은 황금, 진주, 인삼, 담비의 모피 등 수십종이었다. 금지물품을 소지해 적발되면 중곤을 맞거나 귀양, 효수까지 극형을 받았다.

두달여에 걸친 연행의 목적지는 북경이었다. 사신들은 동악묘에서 관리의 공식 복장인 장복으로 갈아입고 말을 타고 표문과 자문을 받들고 차례로 북경의 관문인 조양문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하고 번화한 북경에 눈이 휘둥그레진 사신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신들은 습례정에서 황제 조참 필수코스인 삼궤구고두례 연습을 했는데, 자제군관으로 연행에 참가했던 홍대용이 욕된 의식이라며 피한 일화가 있다.

조선사신들이 북경에서 꼭 들렀던 핫플레이스는 유리창이었다. 4㎞에 이르는 거리에 비단 주옥, 술, 고기, 상점이 즐비했는데, 특히 서점가에서 사신들은 책 목록을 적어와 돈을 아끼지 않고 구입했다. 북적거리는 유리창 서점의 모습과 비교해 박제가는 ‘북학의’(1781)에서 책 한 권 팔기 어려운 조선을 비판하기도 했다.

책은 다른 문화를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던 사행 사신들과 의도치 않은 표류로 강남에 표착한 조선인들이 중국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타자의 시선을 통해 우리 모습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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