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데스크 칼럼] 신한을 보며…금융이 정치를 닮아서야
1867년 11월9일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정권을 무츠히토 일왕에게 넘긴다. ‘대정봉환’이다. 하지만 군사권과 외교권은 유지됐다. 반(反) 막부파이던 사쓰마번, 죠슈번이 군대를 움직여 무츠히토의 신변을 확보한다. 1868년 1월3일 에도 막부를 폐지하고 왕정복고를 선포한다. 도쿠가와 막부가 이에 맞서며 보신전쟁이 발발한다. 막부 측은 병력에서 앞섰지만, 일왕을 앞세운 삿초동맹에 명분에서 뒤졌다. 몇 차례 전투에서 패하자 요시노부는 항복해버린다. ‘메이지유신’의 시작이다. 신정부군은 막부군의 인재 상당수를 재기용한다. 덕분에 일본은 빠른 시간에 근대화와 함께 신식 무력강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8년전 신한금융그룹에서 라응찬 회장과 신상훈 사장 간 대결, 이른바 ‘신한사태’가 발발한다. ‘회장’직을 두고 벌어진 권력 다툼이다. 당시 사태의 여파는 ‘인사’를 통해 중간간부들에게까지 미쳤다. 국내 금융그룹 중 가장 단단한 조직력을 자랑하던 신한그룹에게는 치명적 손실이었다. 이후 한동우 회장의 임기 동안 신한 사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경쟁사이던 KB금융도 최고경영자 자리를 두고 내홍을 겪으면서 신한금융의 시장지위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KB금융이 윤종규 회장 취임과 함께 리더십이 안정되면서 신한의 위상이 흔들렸다. 급기야 리딩금융그룹 자리를 내어주기에 이른다.

조용병 신한지주 회장은 임기 마지막 해를 앞둔 지난 21일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를 대부분 바꾸는 인사를 단행했다. 세대교체가 명분이다. 물러나게 된 위성호 신한은행장은 차기 회장 경쟁자들을 일방적으로 퇴출시켰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갈등의 본질은 결국 ‘차기 대권’이다.

당장 위 행장이 이번 인사를 뒤짚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공교롭게도 조 회장은 채용비리 재판 중이고, 위 행장은 이른바 ‘남산 3억 사건’으로 수사대상에 오르는 등 ‘인화물질’도 쌓여있다. 충돌로 불꽃이 튄다면 큰 불이 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 때문에 조만간 있을 것으로 보이는 조직개편과 부서장급 인사가 중요해 보인다. 이미 신한그룹 임직원들의 불안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금융그룹 지배구조를 보면 3류라 불리는 우리 정치판과 닮았다. 회장은 대통령에 비유할 만 하다. 계파도 있고, 이른바 출신 분류도 존재한다. 외환위기 이후 인수합병(M&A)이 이뤄지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최고경영자가 막강한 권한을 갖는 것은 글로벌 금융그룹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업적이나 성과가 우선한다. 우리처럼 뚜렷한 명분도 없이 밖으로 다 드러나게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곳은 찾기 어렵다. 남다른 경쟁력을 갖는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데 권력 다툼만 잦으니 ‘손쉬운 이자장사’를 한다는 비난을 받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권력 다툼은 어느 조직에서건 피할 수 없다하더라도 최소한 애꿎은 인재를 희생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중국 춘추시대 당진(晉)은 서쪽의 섬진(秦)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당진이 한위조(韓魏趙)로 나뉘면서 열세에 선다. 특히 강했던 위와 조는 끊임없이 경쟁한다. 결국에는가장 약했던 한에 이어 조와 위가 차례로 섬진에 병합당한다. 내부분열로 무너지지 않은 조직은 거의 없다.

kyho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