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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통화정책 소신 결정 하려면…‘샤이 한은’ 버려야
벼랑 위에 걸쳐진 가느다란 외줄 앞에 선 곡예사들의 목표는 단 하나다. 줄 끝까지 무사히 건너가는 것이다. ‘아차’하는 순간 관객들의 야유와 함께 공연은 ‘불명예스러운 엔딩(ending)’을 맞을 수 있다. 덕분에 수년의 공연 경험이 있는 베테랑 곡예사들도 외줄 앞에선 긴장될 수밖에 없다.

외줄타기 성공의 관건은 바로 ‘균형’이다. 곡예사들은 긴 장대를 부여잡고 아슬아슬한 균형 잡기를 시도한다. 보는 관객들도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다. 하지만 긴 장대의 한 중앙을 잡는다고 균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아니다. 장대의 ‘무게중심’을 잡아야 비로소 양쪽의 균형이 맞는다. 장대의 무게중심을 찾아내는 것은 곡예사의 경험과 관록이다.

최근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한국은행의 업무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한은의 정책 목표가 경기대응과 금융시장 안정 등 어찌 보면 상충될 수 있는 두 분야를 모두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는 재정당국과 정책공조는 물론 한은 자체적인 독립성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독립성만 고집하다간 ‘독불장군’으로, 정책공조만 하다 보면 ‘정부의 남대문 사무소’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통화정책이라는 외줄 앞에 선 한은의 기반 여건은 어느 때보다 양호한 편이다. 여전히 외줄은 벼랑 위에 가느다랗게 걸쳐 있지만, 40여년 경력의 곡예사(이주열 총재)가 언제든 줄을 탈 수 있는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장대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소득주도 성장에서 혁신 성장으로 전환되면서 장대의 ‘무게중심’이 변하고 있다. 국민의 소득 증가를 시키려고 빚 부담을 걱정했던 정부가 이제는 경제 전반의 혁신을 통한 규모 확대로 목표를 바꾼 것이다. 이례적으로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정부가 앞으로는 과거의 정부들처럼 노골적으로 금리인하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장대 한쪽 끝에 놓인 정책공조 요구가 어느 때보다 무거워진 셈이다.

한은은 정부의 정책 변환을 인지하면서도 반대쪽 끝단에 놓인 ‘기관의 독립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이 총재도 최근 간담회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투자 활력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정작 한은의 내년도 통화정책에 대해선 “거시 경제와 금융 시장 안정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며 방향성을 보여주지 않았다. 장대 한쪽이 기우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홍남기 신임 경제부총리는 전임 부총리와 마찬가지로 취임 후 첫 방문 외부기관으로 한은을 선택했다. 19일 이 총재를 만나 경제현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홍 부총리는 내년 경기 상황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한은과의 정책 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은이 2기 경제팀 체제에서도 소신 있게 통화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이른바 ‘균형’을 잡으려면, ‘샤이(Shy) 한은’을 버려야 한다. ‘정부 기관 간 불협화음’이라는 비판을 두려워 숨죽이고 있다가는 다시 ‘정부의 남대문 사무소’라는 오명을 쓸 수 있다.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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