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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김준형 칼럼니스트] 원숭이 사회
‘희생양(scapegoat)’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유태인들의 속죄 의식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유태인들은 죄의 용서를 비는 ‘속죄일’이 되면, 두 마리의 염소를 준비 한다. 사제는 그 중 한 마리를 죽여서, 제단에 피를 뿌린다. 사람들은 또 다른 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신들이 저지른 모든 죄악을 고백한다. 이렇게 하면, 죄는 모두 염소에게 옮겨가고, 자신은 순결한 상태가 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죄를 모두 짊어진 염소는, 결국 황야로 쫓겨나서 죽게 된다.

사육사들은 원숭이들을 키울 때, 아기돼지를 희생양으로 쓴다고 한다. 원숭이 사회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매우 엄격한 위계질서를 가진다. 우두머리가 있고, 자신이 가진 힘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우두머리 원숭이는 집단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다. 서열이 낮은 원숭이로부터 먹을 것을 빼앗고, 마음에 안 들면 때리기도 하지만, 서열이 낮은 원숭이는 저항하지 못한다. 우두머리에게 괴롭힘을 당한 원숭이는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원숭이를 찾아 괴롭히면서 분을 삭인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는 식이다. 이렇게 원숭이의 분노와 폭력은 서열에 따라, 아래로 아래로 이어진다. 결국 서열이 가장 낮은 놈은 원숭이 집단의 ‘공동 샌드백’이 되는 것이다. 다른 원숭이들에게 시달리던 샌드백 원숭이는 얼마 못가서 죽어 버린다. 서열이 가장 낮은 놈이 죽어버리면, 다음에는 두 번째로 서열이 낮은 놈이 공동 샌드백 자리를 물려받는다. 그리고 이 녀석도 얼마 못 버티고 죽게 된다. 이렇게 한 마리씩 죽어 나가면, 원숭이는 우두머리 한 마리만 남게 된다.

그래서 영리한 사육사는 원숭이 우리에 아기돼지를 한 마리씩 넣어서 키운다고 한다. 힘없는 아기돼지는 집단의 공동 샌드백 역할을 하다가 죽는다. 아기돼지가 죽으면, 곧 새로운 아기돼지를 원숭이 우리에 넣는다. 이런 식으로 돼지를 희생시키면, 가격이 비싼 원숭이를 한 마리도 죽지 않게 할 수 있다.

인간 사회의 모습도 원숭이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분노와 폭력성을 폭발시킬 수 있는 대상을 찾아 헤맨다. 대부분 대상으로 지목되는 사람들은 소수의 약자들이다. 강자들은 약자들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서 괴롭힌다. 그런데 인간은 욕하고, 때리고 비난하는 동안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쾌감에 빠지면 폭력은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네로 황제의 카톨릭 교도 학살,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일본의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은 모두 이렇게 이루어진 비극이다.

얼마 전, 인천의 한 중학생이 동급생들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추락해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패딩 점퍼를 빼앗고, 그 점퍼를 입은 채로 법원에 출석하는 엽기적인 행각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피해 학생이 러시아 국적의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시절부터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억장이 무너지게 만들었다. 피해학생은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분노를 짊어진 희생양이었고, 원숭이 우리 속의 아기돼지 신세였던 것이다.

세상에는 항상 강자로 사는 사람도, 항상 약자로 사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우두머리 원숭이처럼 살 때도 있지만, 아기돼지처럼 살아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자라고 해서 약자를 괴롭혀서도 안 되고, 약자라고 해서 당하고만 살아서도 안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고 비극을 되풀이한다.

인공지능이 운전을 하고, TV에게 음성으로 명령을 하고, 신문 대신 핸드폰으로 뉴스를 읽는 시대다. 이렇게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원숭이 수준이다. 언제까지 약자를 찾아 괴롭히는 짓을 계속할 것인가? 언제까지 소수자들을 따돌리고 조롱할 것인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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