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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코리안 랩소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300만 관객을 넘겼다. ‘퀸 세대’였던 중·장년은 물론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난 뒤 팬층에 합류한 젊은 세대도 함께 영화를 즐긴다. 영화 뿐만 아니라 온라인 음원 순위에서도 퀸의 노래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본명은 ‘파록 불사라’다. 그는 조로아스터교도의 후손인 인도 이민자였다. 8살 때부터 인도 뭄바이의 기숙학교에서 수학했다. 그가 양성애자였는지 동성애 쪽에 가까웠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성 소수자였던 것은 분명하다.

영국인들은 그의 출생 배경과 성적 취향을 궁금해했고, 때론 공격했다. 프레디 역시 자신의 민족성이나 성 정체성을 직접 밝히지 않았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를 보면 일종의 콤플렉스였던 듯 하다. 콧수염을 길렀던 것은 ‘게이 패션’인 동시에 앞니가 튀어나온 구강구조를 감추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 영국 현지 언론에서는 출생지를 비꼬아 ‘뭄바이 랩소디’라는 말을 기사 제목에 넣었다. 프레디가 일본 공연을 갔을 때는 ‘여기서는 뻐드렁니를 숨기지 않아도 되니 고향에 온 것 같지 않느냐’는 고약한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와닿는 이유는 퀸의 음악세계를 곱씹게 만들어서만은 아니다. ‘평범하지 않은’ 프레디 머큐리가 그저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으려 노력하는 과정이 주는 감동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에 열광하는 분위기와 차이가 크다. 지난 2일 한 시민단체 회원 수십 명은 대검찰청 앞에서 시위하며 난민법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법무부에서 추진하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과 학생인권조례를 비판하는 구호도 나왔다. 최근 제주에 머물고 있는 예멘인들에 대한 시선도 차갑다. 아직 난민으로 인정된 사례가 없고, 인도적 체류 허가가 났을 뿐인데도 마치 큰 일이 벌어진 것처럼 공포심을 조장한다. 제주 인구가 60만이 넘는데, 어린이와 여성, 노인을 포함한 300여명의 외부인이 머문다고 해서 치안에 큰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언제부턴가 영화 스크린과 TV에서 조선족은 강력범죄를 서슴치 않는 이미지로 소비된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지역에서 일하는 한 고위 검찰 간부는 “기관보고를 할 때 외국인 밀접지역이라는 특성이 있다는 말이 들어가면 빼라고 한다”고 했다. 외국인 범죄 비중이 크지 않은데도 편견을 부추길 수 있어서다. 일상 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조선족 근로자들은 흉기를 들고 다니는 깡패가 아니라 평범한 식당 종업원들이다.

성 소수자도 마찬가지다. 법무부에서 인권 업무를 맡았던 한 전직 검사는 기독교계 반발 때문에 정책 추진이 힘들었던 얘기를 전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근거없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성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도록 제도화하자는 것일 뿐인데도, 금방이라도 동성혼이 급증할 것처럼 불안감을 부추긴다. 하지만 동성애는 전염병이 아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의 아버지는 ‘좋은 생각, 좋은 행동, 좋은 말’이라는 조로아스터교 교리를 여러 번 강조한다. 아들은 결국 종교도 부정하고, 평범한 성 정체성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통해 에티오피아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돕는다. 영화에서 극적으로 다뤄지는 자선 공연인 ‘라이브 에이드’ 무대는 밴드 퀸 멤버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사건이지만, 프레디 머큐리가 자신의 방식대로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을 보여줬다는 점을 나타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퀸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는 아카펠라와 오페라, 하드록, 발라드가 어우러져 장르를 특정하기가 어렵다. 처음엔 록 계보에 넣지 못하는 ‘괴작’ 취급을 받았지만 결국 명곡으로 남았다. 사회는 집단보다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나를 인정해달라’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갈등은 피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퀸의 열성팬이었던 가수 신해철은 생전에 ‘위 아 더 챔피언’을 “축구장에서 이긴 쪽은 이겼다고, 진 쪽은 졌어도 우리가 진정한 승자라고 이 노래를 부른다”고 소개했다.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타협을 이뤄나간다면 그 과정에 참여한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여러 장르가 어우러진, ‘코리안 랩소디’가 필요하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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