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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노벰버 레인’ 혹은 ‘진눈깨비’
11월 하늘은 잿빛이다. 언제 울음을 터뜨릴지 모른다. 태생이 그렇다. 이듬해 새 생명이 움틀 때까지 인고(忍苦)만 남아서다. 다산(多産)의 향연이 끝난 지점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럽다.

지상(地上)은 딴 판이다. 벌겋고 노란 잔치다. 단풍과 은행잎이 앞다퉈 자기색을 뽐낸다. 저 잎이 내년에도 만날 그 잎이라고 점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떠나는 퇴장이라 유독 잔상이 오래다. 저들의 절정은 언제였을까.

정권을 감싼 대기(大氣)가 무겁다. 회색빛 경제가 결정타다. 그들의 전성기는 초록의 5월에 국한하는 걸지도 모른다. 불안함이 맴돈다. ‘위기도 아니고, 침체도 아니다’라는 정권 조타수들의 경제 판세 분석이 알알하다. 경제가 정치를 입었다. 아니라면, 시장의 아우성이 이렇게 굴절할 수 없다.

11월의 비를 기다린다. 후두둑 떨어질 빗방울이 자각의 알람이라도 될까 해서다. ‘영원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마음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우린 알아요. 촛불을 지키는 건 어렵죠. 차가운 11월의 빗속에서….(록그룹 건즈앤로지즈의 노벰버 레인)’

만개하기도 전에 낙하할 꽃잎의 운명을 하릴없이 목도하는 건 국민 절반 이상이 바랐던 일이 아니다.

차라리 눈을 갈망한다. 불협화음ㆍ독주(獨走)ㆍ색깔 논쟁을 덮고 새로 출발할 계기로써다. 비가 섞인 눈, 진눈깨비라면 더 좋다. 시인 기형도는 수작(秀作) ‘진눈깨비’에서 삶을 통찰한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

그의 언어는 강렬하다. 어떤 곡절(曲折)로 불행이 공공연한 건지 알고 싶어진다. 지휘자의 언어에 이런 수준의 냉정한 자아성찰을 바라는 건 애초 무리다. 비전을 제시해야 할 사람이 동정의 대상이 되는 건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위기 불감증’에 걸린 듯 독야청청하는 건 세상과 담 쌓고 있는 듯해 불편하다. 자각과 성찰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전임자의 유산이 생생하다. 영어(囹圄)의 몸이 된 그는 4년 전 이맘때 호주에서 이륙한 공군1호기에서 IMF(국제통화기금)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한국의 경제혁신3개년 계획은 G20 성장전략 중 최고라고 평가한 데 대해 “3년 뒤에는 결과도 1등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들떴다. 지금 우린 1등은 커녕 위기를 알리는 시그널 앞에 섰다.

개혁이 시급한 분야가 널렸는데 정권은 외롭다. 보수의 협조는 언감생심이다. ‘돌격 앞으로’ 해야 할 여권 내부에선 특정 개혁 과제를 놓고 의견 불합치가 늘어난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업ㆍ가계 경제의 실핏줄을 살릴 금융개혁에 대한 큰 그림엔 손도 못대고 시간만 흐른다. 경제 살릴 묘책이 달리 없다면 불행하다고 실토하고, 척을 진 상대에게도 우군(友軍)이 돼 달라고 손을 내밀라. ‘함께 잘 살기 위한 국가로의 전환’에 성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전환 과정에서 깊게 패일 고통의 웅덩이를 채워 바다로 나아갈 물을 대는 건 정권이 아닌 기업과 국민이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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